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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365/매일365

그토록 맑은 워낭소리

그토록 맑은 워낭소리


  흔히들 지금 우리시대를 일컫어 인스턴트 사회라고 부른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빨리 생산되고 소비되며 한 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비단 물건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득과 실을 따지고 쉽게 사랑하며 헤어지는 반복을 수없이 하게된다. 

  이러한 인스턴트 사회에서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고 서로를 바라 볼 수 있는 대상이 우리에게는 있을까

  영화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많은 연출과 장비 없이 자연 속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40년의 동반자인 소가 그려내는 영화다. 특별한 장치가 없었음에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냈기에 가능했다. 할머니의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는 탄식도 할아버지가 병원 주차장에 소를 주차한 모습도 모두 진실했기 때문이다. 

  평균 소는 15년을 산다고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기르는 소는 그와 40년을 함께 산 ‘동반자’라 할 수 있다. 길어봤자 10년을 연애하고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40년, 정말로 많은 세월을 함께 일하며 먹으며 살아왔다. 그런 늙은 소가 이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은 어떠한 슬픔일지 나는 아직 가늠조차 안된다. 

  영화 중간에는 할아버지와 소가 함께 걸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할아버지가 소를 밀어주지도, 소가 할아버지를 태우지도 않고 둘이 묵묵히 길을 걷는 장면이 내게 따뜻한 감동을 주었다. 이 삶을 살아가는, 관계를 맺어가는 하나의 태도가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도와 힘이 되어주는 것도 물론 좋지만 제 갈길을 조용히 가며 서로의 옆에서 같이 걸어나가는 그 모습이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누구보다도 소를 아끼기에 농약을 하지도, 기계를 쓰지도 않고 옛날 전통방식 그대로 농사짓는 할아버지와 야위었음에도 군소리 하나 안 내며 밭으로 향하는 늙은 소,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한숨을 내뱉지만 끝내 함께하는 할머니. 그들에겐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랑이 있다. 그 작은 사랑이 그들의 셋을 둘러싸고있다. 

  힘든 삶이고 각박한 사회 세상이다. 앞으로도 무수한 벽들이 내 앞에 놓일 것이다. 그러한 아픔을 지나쳐 나아갈 때에 내 옆에 묵묵히, 소처럼 같이 있어줄 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행복할 것이다. 많은 도움을 바라지도, 요구하고싶지도 않다. 그저 한결같은 눈빛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대상을 나는 갖고 있을까.

  늙은 소의 마지막을 보내줄 때에 할아버지는 잘 가 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던 소의 모습이 아직도 어른거린다. 나도 누군가에게 편안한 인사를 건네주고싶고 또 누군가에게 내가 그러한 존재가 되고싶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워낭소리가 맑게 울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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