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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감성/씀

취중진담

입시를 끝냈다.


  그렇게 길고 긴 것 같았던 5개월의 입시를 끝나고 나서야 나는 무엇을 느끼게 된 건지 아직은 확실히는 모르겠다. 다만 나의 가슴을 가장 크게 울려친 것은 나는 나의 할 일을 백의 팔십오는 꾸준히 달려왔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의 할 일에 최선인 듯 최선을 다하였다. 지금까지 스무살의 나는 갈팡질팡 갈피를 못 잡았지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는 달려왔다고 그래도 강하게 말할 수 있다. 




  5개월의 공부를 끝내고, 필기 시험을 치르고, 필기 합격을 통보받고 그렇게 길거리에서 엉엉 울며 부모님에게 떨리는 손으로 통화를 했던건, 아마 내가 그 어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으리라. 그렇게도 가능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면접을 보고,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지탱해가며 한 발짝 문을 나왔을 때의 그 또 다른 모습을 마주한 나는, 아마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의 타지에서의 대학 생활이 내게 어떠한 방향과 그림을 그려줄지는 나도 모른다. 오로지 나의 몫에 따른 일이다. 그 누가 어떠한 충고를 해주어도 선택을 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고 결과이기때문이다. 

  다만 바라는 것은 앞으로의 유학생활을 하면서도 그저 멍청하고 수동적인 학생이지만은 아니길 이렇게 또 바래본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듯이, 꽃이 피면 열매가 맺어지듯이 그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멍청한,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순응적인 나이지만은 아니길 바래본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동거를 시작했다. 


  시작한지 2주만에 삐그덕 거리는 잔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를 바라보는 타인과 내가 행동하는 나의 모습에서 오는 여러가지 충돌들, 가령, 내가 무시하려하고 피하려했던 좋지않은 나의 과거의 행동들을 현재에 나와 마주하고, 그것을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군가의 입을 통하여 듣는 것은 정말이지 잔인하다. 물론, 모두  나를 사랑할 수는 없다. 나도 그 모든 누군가를 사랑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그 친구의 언어로 듣는 나를 향한 원망과 실망은 아무래도 지금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듯 하다. 나는 항상 관심 받기를, 관심을 주기를 원하는 사람이였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는데, 타인을 통해 듣는 나의 여러가지 모습은 아무래도 어렵다.



  내가 존경하는 스승님은 인간관계는 1만 있으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하신다. 그 1이 우리는 전부라 생각하지만 사실 1을 제외한 또 다른 9를 통해 우리는 어긋나고, 아파하며 사랑하고 위로한다고 말하셨다. 나는 나의 9를 제대로 인정하고 마주 볼 자신이 있는 것일까.



점점 두렵다. 


  내가 나를 점점 더 많이 포기하고 그냥 넘어갈까봐. 나는 나의 한숨을 어디까지 허용하는건지. 점점 더 두렵고 무서워져가는 것 같다. 

나의 마주하기 싫은 약점을, 나의 치부를, 남을 통해 듣고, 또한 그가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미안하고 창피하여 입 밖으로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개구리의 내장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듯, 나는 나의 치부를, 약점을 어디까지 봐주고 용납하는건지. 

나의 한숨은 어디까지 흘러가는건지. 이러다 정말 내가 나를 놓게되는건 아닌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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