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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365/매일365

책을 읽지않는 당신들과 국가


  당신은 한달에 책을 몇 권 읽는가? 짐작하건데 아마 주기적으로 3권 이상 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포털사이트에서 나온 결과로는 성인 연간 독서량은 9.2권이며 평일 독서시간은 23분 내외이다. 한국인 하루 평균 인터넷 사용량은 2.3시간, 스마트폰 사용량은 1.6시간에 비하면 턱도없는 수치이다.이것도 2013년도 결과라서 아마 수치는 더 낮아졌을거라 생각한다. 
내 주변에서만 보더라도 세권은 커녕 한 달에 한 권 이상 읽는 애들도 손에 꼽을 지경이다. 책을 읽지않는 이유가 궁금하여 물었었고 대답은 언제나 예상했던 그것이었다. “재미없어, 뭐하러 읽어? 그 시간에 미적분을 한 번 더 보겠다.” 이것은 꽤 위험한 수준의 대답이라고 할 만하다. 책을 읽지않는 아이, 청소년, 청년, 노년. 그리고 외면하는 국가.



  내게 책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책은 한 세계이고, 그 세계는 내가 경험치 못한 것을 알려주니 읽는다.’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책을 읽고 또 많은 사람들도 다양한 이유로 독서를 멀리한다.



  나는 책은 습관에 의해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적 부모님이 책을 책장에 항상 꽂아주셨었고 일부러 방바닥에 어지렆히기도 하셨다. 아마 나와 책을 가깝게 하기 위해 생각하신 아이디어인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 읽는 습관을 기르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어렸을적부터 고전이나 어려운 소설을 읽은 것은 아니였다. 지금도 생각나는 책장 풍경은 <그리스 로마 신화> 전권과 <호기심 천국-과학 특공대>였나, 혹은 <어린이를 위한 고전 클래식> 등 쉽고 만화로 된 책부터 접했었다.
아동기에 접한 책과 그 속의 상식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아직도 내 머리 속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러 상식들, 예를 들면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의 간략적인 줄거리라도 알고 12신이나 그들에 관한 유래는 나의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게 말 할 수 있다. 
  유아동기에 책과 친하게 지낸 아이들은 성장하면서도 책을 멀리하지 않는다. 우선적으로 지식의 베이스를 쌓을 수 있는 곳은 책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굳이 멀리하지 않는 것이다. 



  비약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책은 담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른채로 접하지만 읽다보면 읽을수록, 하다보면 할수록 습관이 되어가고 습관은 취미와 애호가 돼가는 것이다. 



  대한민국 보통의 가정 분위기는 어떠한가, 부모는 유아동기에는 책을 많이 접하게하려고 클래식 명작 100권을 사다놓는다던가 한국뿐만아니라 글로벌하게 세계의 위인전까지 몽땅 아이들에게 사다 바친다. 그러나 처음부터 어려운 책들을 억지로 미취학 아동들에게 건네면 어쩌란말인가. 읽고싶기는 커녕 집어 던지지않는 것이야말로 다행스러운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 좀 책을 읽어볼까 싶으면 부모들은 금세 돌변한다. 책 읽을 시간에 공부나 좀 더 하라고, 책 읽을 여유가 있냐며 꾸중한다.
  굉장히 역설적이라고 생각한다. 한창 사고하고 창의성이 키워질 나이에 책을 손에서 빼앗다니. 이래놓고서 교육부는 청소년들에게 창의적으로! 참신하게! 라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인가.



  나이대에 맞는 책이 꼭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의 역량과 수준에 따라 독서의 양과 질이 달라지는데 너무 높은 차원의 책을 아이들에게 읽히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서습관은 처음이 중요한데, 수용자가 느끼기에 어렵거나 이해되지 않는다면 올바른 독서습관을 가지기란 어렵다. 
  독서는 습관이다. 처음에 어떻게 들이냐와 이것을 지속해서 나가는 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사회가 책을 권하지 않고 있다. 물론 정부는 ‘책의 날’을 지정해 아이들의 손에 강제로 책을 쥐어주긴 하지만 이것은 ‘강요’이며 ‘폭력’이다. 억지로 시키는 것은 오히려 반감만 상승시키고 독서와는 거리가 멀어지는게 당연한 결과 아닌가.
또한 사회 분위기가 공부’만’ 잘하면 되는 분위기라 학원에서 지식을 습득하느라 바쁜 아이들에게 독서의 배움은 무시한채 학교 학원 집 뺑뺑이만 돌리는 사회이다.



  독서하지 않는것은 문제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적을 높이는 것은 단순히 근시안적인 시선에 불과하다. 수능지식은 가득하지만 내면의 힘과 사고하는 뇌 근육은 밋밋한 사람에게 그토록 한국사회가 부르짖는 창의력과 창조성을 기대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이다.



  또 한가지 심각한 문제는 바로 겉치레로 책을 읽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온 포커스를 맞춘다. 내가 좋아하고 읽고싶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남이 보기에 멋있어 보이는 책, 혹은 어려워 보이는 책. 허세로 가득 찬 독서방법이다. 물론 이렇게 읽더라도 남는게 있다면 좋은 현상이겠지만 대부분은 타인의 시선만 사라진다면 책장을 덮는다. 지하철에서 <코스모스>를 읽는 사람이여도 중력을 발견한 사람이 뉴턴인지 아인슈타인인지도 헷갈리는 사람이 허다하다는 얘기다. 남의 시선에 의해 책을 선별하고 읽으니 어렵고 읽고싶은 마음이 사라지는게 당연하다.
  아무렴 어떤 책이여도 좋다. 남자가 하루키를 읽는다고 해서 문제될게 없지 않은가!
본인이 좋아하고 읽고싶은 책을 읽어야한다. 이것이 이어지면 그저 한 권의 소설에서도 인문과 고전으로 이어지는 신기한 길을 경험할 수 있다. 



  한 때 나는 허세독서를 즐기느라 고전은 대충, 소설을 덜 대충하며 독서하곤 했다. 그러던 중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푹 빠져서 한 몇달간은 하루키의 전권을 다 읽느라 혼을 뺐던 적이 있었다. 하루키를 읽으니 일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은 나스메 소세키의 전집을 읽게하고 기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탐미하게 되었으며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는 기회도 되었다. 그저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후 일본 고전에까지 다가간 것이다! 이쯤에서 하루키에게 박수를 돌리도록 하자.



  한 인간을 알고자 할 때에는 그 사람이 지금 읽는 책과 그가 쓴 글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였다.
스펙은 토익 점수나 자격증의 개수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는 이것을 알아야한다. 독서하지 않는 사람의 스펙은 그저 허울뿐이라는 것을. 전에도 말했듯이 독서하지 않으면 생각 할 수 없고 사고하지 않는 삶은 죽은 삶과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또한 가정에서도 교육되어야 한다. 육아가 물론 힘들고 지친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게 도와주고 아이가 운다고 해서 스마트폰을 쥐어줄 것이 아니라 옆에서 책으로서 육아하는 방법을 지향해야 한다. 
한 개인으로서는 책의 중요성을 알아야한다. 책은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읽는 것보다는 그 자체로서 즐겁고 지식을 확장하고 비판적 사고를 갖게되는 하나의 과정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새인가 내가 그저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 아닌, 정보를 선별해서 받아들이고 활용하며 비판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자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 중 비판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것에 책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수많은 경험과 지식이 녹아내려져있는 삶이 결과물이다.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서 작가가 만들어놓은 한 세계를 경험하고 그 세계를 나에게, 상대에게, 사회에게까지 바라보는 거시적인 태도를 갖출 수 있게 된다. 



대한민국의 침체된 독서시장을 높이기 위해서 몇 마디 적어보겠다.

우선, 읽고싶은 책을 읽도록 하자.
자기 계발서도 좋고 소설도 좋으니 좋아하는 작가도 만들어보고  관심가는 책부터 읽어보자. 괜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논어>등 알량한 허세는 잠시 접어둬도 좋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로부터 시작한 작은 관심이 언젠가는 진심으로 <군주론>을 읽게 하고 당신또한 생각하게 할 것이다.



다음으로 책을 읽는 것은 가장 오랫동안 검증된 지혜이다.
사회가 급변하고 스마트 시대로 변하면서 수많은 아이북이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책이 여전히 굳건한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그저 ‘책’이라는 존재만으로도 설명이 된다. 
작가 허지웅이 말했듯이 TV만 보면 테이스트가 없는 사람이 되고 인터넷만 보면 자기가 해보지 않은 모든 것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틀렸다고 말하게 되며, 경험만 많이 쌓으면 주변 세계와 격리된 꼰대가 된다고. 종류가 무엇이든 읽자. 책은 가장 오랫동안 검증된 지혜라는 것은 반박불가이다. 



마지막으로 책=허세, 어려움 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라!
프레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한번 만들어 놓은 프레임은 잘 깨지지도 않고 깨고 싶지도 않아한다.
어렸을 적부터 책에 습관을 들이지 않았다면 저 프레임은 머리 속에 딱 박혔으리라. 책은 결코 어렵고 허세의 행위가 아니다. 언제부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는 것이 허세고 카프카를 논하는 것이 멀게만 느껴졌는가.
지적 자산은 남에게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다. 오히려 책을 읽지 않고, 사고하지 않는 사람의 대화야말로 허세끼가 가득하다. 



  책을 읽어야만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수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기본 베이스는 ‘책’이다. 성공을 위해서 독서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독서는 성공한 많은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으니 하물며 우리한테는 어떠할 것인가. 
  남을 위해서 독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부터 나아가야한다. 이미 당신의 내면에서 지적 허덕임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책 읽는 시간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

  - 데카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