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죄악은 악한 '본능'을 교화시키려는 잘못된 '선'의 방법이다. 


우리의 저 밑바닥에는 분명 개개인마다의 악한 그림자가 도사리고있다. 


절대적인 순수'악恶'을 교화시키는 것은 가능한가, 또한, 개인의 도덕적 의지없이 오직'선善'만 강요당하는 것이 치유인가 혹은 본능으로 돌아오는 것이 치유인가. 


선과 악의 갈림길, 그 미묘한 한 끝이 사회를 부수고 상대를 해치고 살리며 완전히 치유되게 한다. 






'매일365 > 매일365' 카테고리의 다른 글

A Clockwork Orange  (0) 2016.06.29
그토록 맑은 워낭소리  (0) 2015.10.18
청춘: 푸르른 봄  (0) 2015.10.06
로망, 소소하지만 담백한, 달콤한.  (0) 2015.08.21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2  (0) 2015.08.17
당신만이 아는 '그 다음'  (0) 2015.08.06
Posted by nakhm999

댓글을 달아 주세요

그토록 맑은 워낭소리


  흔히들 지금 우리시대를 일컫어 인스턴트 사회라고 부른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빨리 생산되고 소비되며 한 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비단 물건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득과 실을 따지고 쉽게 사랑하며 헤어지는 반복을 수없이 하게된다. 

  이러한 인스턴트 사회에서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고 서로를 바라 볼 수 있는 대상이 우리에게는 있을까

  영화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많은 연출과 장비 없이 자연 속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40년의 동반자인 소가 그려내는 영화다. 특별한 장치가 없었음에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냈기에 가능했다. 할머니의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는 탄식도 할아버지가 병원 주차장에 소를 주차한 모습도 모두 진실했기 때문이다. 

  평균 소는 15년을 산다고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기르는 소는 그와 40년을 함께 산 ‘동반자’라 할 수 있다. 길어봤자 10년을 연애하고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40년, 정말로 많은 세월을 함께 일하며 먹으며 살아왔다. 그런 늙은 소가 이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은 어떠한 슬픔일지 나는 아직 가늠조차 안된다. 

  영화 중간에는 할아버지와 소가 함께 걸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할아버지가 소를 밀어주지도, 소가 할아버지를 태우지도 않고 둘이 묵묵히 길을 걷는 장면이 내게 따뜻한 감동을 주었다. 이 삶을 살아가는, 관계를 맺어가는 하나의 태도가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도와 힘이 되어주는 것도 물론 좋지만 제 갈길을 조용히 가며 서로의 옆에서 같이 걸어나가는 그 모습이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누구보다도 소를 아끼기에 농약을 하지도, 기계를 쓰지도 않고 옛날 전통방식 그대로 농사짓는 할아버지와 야위었음에도 군소리 하나 안 내며 밭으로 향하는 늙은 소,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한숨을 내뱉지만 끝내 함께하는 할머니. 그들에겐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랑이 있다. 그 작은 사랑이 그들의 셋을 둘러싸고있다. 

  힘든 삶이고 각박한 사회 세상이다. 앞으로도 무수한 벽들이 내 앞에 놓일 것이다. 그러한 아픔을 지나쳐 나아갈 때에 내 옆에 묵묵히, 소처럼 같이 있어줄 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행복할 것이다. 많은 도움을 바라지도, 요구하고싶지도 않다. 그저 한결같은 눈빛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대상을 나는 갖고 있을까.

  늙은 소의 마지막을 보내줄 때에 할아버지는 잘 가 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던 소의 모습이 아직도 어른거린다. 나도 누군가에게 편안한 인사를 건네주고싶고 또 누군가에게 내가 그러한 존재가 되고싶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워낭소리가 맑게 울리는 듯 하다. 


'매일365 > 매일365' 카테고리의 다른 글

A Clockwork Orange  (0) 2016.06.29
그토록 맑은 워낭소리  (0) 2015.10.18
청춘: 푸르른 봄  (0) 2015.10.06
로망, 소소하지만 담백한, 달콤한.  (0) 2015.08.21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2  (0) 2015.08.17
당신만이 아는 '그 다음'  (0) 2015.08.06
Posted by nakhm999

댓글을 달아 주세요

 청춘: 푸르른 봄


  10월을 시작하고 여섯번의 낮과 밤이 흘렀다. 10월이라하면 가을의 문턱에 성큼 올라와 지내왔던 추억과 지나갈 시간에 대해 생각도 해보는 나날이다. 나 스스로도 가만히 앉아 내 기억들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 잦아졌다.
 
   작년의 마지막 날에는 내 스스로에게 앞으로 올 2015년이 큰 의미를 갖을 것이고 스무살은 그 누구보다 파란만장하고 빛날것이라고 다짐했다. 물론 완전히 긍정하는건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빛났고, 푸르렀었다. 내게 스무살은, 즉 청춘은 그 어떤 것들보다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제 막 시작하는 설렘, 젊음 속에서 빛나는 푸르름, 그 맑은 싱그러움들이 가지고있음에도 아까웠고 욕심났었다. 

  청춘, 푸르른 봄이라 하였다. 입술로 소리내면 심장이 두근거려진다. 나는 지금 그러한 청춘을 살아가야 할 사람이다. 잔디 위에 앉아 책을 읽기에도, 친구들과 깔깔 소리내며 웃기에도, 수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기에도 부족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청춘 자체를 향유하지 못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학비를 벌기위해, 대기업에 잘보일 스펙을 위해 혹은 스스로의 생계를 위해 젊은이들은 돈을 벌고 일을 한다. 사회는 지금부터 노력하지 않으면 인생의 패배자가 될뿐이라며 그들을 다그친다. ‘경쟁’이라는 이름 아래에 우리는 발버둥치고있다. 

  그런 젊은이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바로 나 스스로조차도 아르바이트를 했고 돈을 벌었다. 나는 시간과 노동을 팔아 학비를 마련했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했던 약 10개월의 시간이 어리석었던 선택만은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카페라는 작은 사회, 그 사회 안에서 겪었던 많은 인연들이 결코 무용지물은 아니다. 많은 배움과 성찰이 있었고 성장도 하였다. 

  다만,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그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한 권이라도 더 책을 읽어 배우고 한 편의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더 많은 곳을 여행하며 나만의 진지한 경험들을 만들었다면 더욱 단단한 나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을텐데하며 씁슬하게 웃는다. 

  나는 이제 생산가능한 사람이 아니다. 실업자가 된 꼴이다. 역설적이지만 정말로 기쁘다. 돈을 벌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시간들은 나의 자유에 의해 쓸 수 있는 자유인이므로 무척 행복하다. 

  자신이 청춘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는 항상 말하고싶다. 우리의 젊음을 향유하지 못한채 흘러 보내지 말자고. 이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이 순간의 감동을 외면하지는 않았으면한다. 카운터 앞에 앉아 포스를 찍는 모습보단 돗자리 위에 앉아 청춘의 시간에 대해 재잘거리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훨씬 감동적이다. 


  젊은이들은 별 이유없이 웃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가진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이다. -오스카 와일드
  


  

  


'매일365 > 매일365' 카테고리의 다른 글

A Clockwork Orange  (0) 2016.06.29
그토록 맑은 워낭소리  (0) 2015.10.18
청춘: 푸르른 봄  (0) 2015.10.06
로망, 소소하지만 담백한, 달콤한.  (0) 2015.08.21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2  (0) 2015.08.17
당신만이 아는 '그 다음'  (0) 2015.08.06
Posted by nakhm999
TAG 청춘

댓글을 달아 주세요

 
로망, 소소하지만 담백한, 달콤한. 



  사람들에게 로망이라고 하면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들의 로망은 나의 것과 얼마나 다를지, 또 어떠한지 호기심이 들었다. 살짝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은 타인의 로망은 그들의 것이고 누군가 알게되는 것을 꺼려할수도 있기에 잠자코 있기로 하였다. 
  다들 각자의 마음 속에 로망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로망이라하면 무언가 거창하고 꿀이 떨어질 듯 로맨틱한 소망이라고 여길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서 로망은 소소하고 그래서 담백한 그런 것이다. 



  로망, 나직이 말할 때에 참으로 어여쁜 단어이다. 단어 스스로 가지고 있는 뜻 또한 어여쁘다. 비록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통상적으로 누군가 무엇을 갈망하는 꿈, 열망, 희망 등을 로망이라고 말한다. 모두들 마음 속 하나의 작은 꿈, 무언가를 위한 열정과 열망,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의 로망쯤은 한 개씩 가지는게 분명하다. 



  나이가 조금씩 먹어가면서 로망이 점점 변해갔다. 어렸을 적에는 놀이공원에서 자유이용권으로 하루 종일 노는 것이 로망이였다. 지방에 살아서 놀이공원을 자주 가지 못했고 부모님이 맞벌이셔서 시간이 맞지않아 가지 못한 것이 마음 속에 응어리로 있었나보다. 그 때는 가족들과 함께 놀이공원에서 하루종일 깔깔 웃으면서 돌아다니고싶은게 가장 큰 로망이였다. 
  지금은 예전과는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살짝 변했다. 이제는 뜨겁고 사람 북적거리는 놀이공원 보단 오히려 바람 선선하게 부는 가을 날에 한강이든 어디든 큰 강이 시원하게 흐르는 곳을 안주삼아 돗자리를 펴고 맥주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싸들고 누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누워서 책을 읽고싶다. 서울이나 큰 강을 곁에 두고 사는 사람들에겐 열대야를 피하기위해 일상일수도 있지만 내게는 그런 것이 소소한 로망이고 부러움이다.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물이 흐르는 곳을 찾아 좋아하는 작가의 책과 알딸딸한 데이트를 하며 바람을 맞는 것, 상상만해도 가슴이 콩콩거리는 일이다. 한가지 욕심을 부리자면 책을 읽는 내 옆에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더욱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함께있는 그 자체로 우리들의 우주는 로맨틱할 것이다. 
  아마 더 이상 이룰 꿈은 없겠다. 참 충분하고 어여쁜 로망이다. 



  로망은 그래서 달콤한가보다. 저런 사소한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띄우는, 마음 한 켠에 하루를 조금은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굳이 거창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작고 소소할수록 오히려 더 기쁘다. 



  나는 로망이 많은 사람이 좋다. 마음 속에 소소하지만 그 자체로 빛이되는 로망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세상을 더 다양하게, 따뜻하게 바라볼 것만 같다. 나 또한 다양한 색채의 로망을 가지는 사람이 되고싶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가슴 속에 로망을 품고있는 사람과 사회가 가득하길 바란다.




  오늘도 작지만 담백한, 가령 사랑하는 이와 밤을 새며 별을 헤아리는 그런 밤을, 로망을 꿈꿔본다. 




'매일365 > 매일365'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토록 맑은 워낭소리  (0) 2015.10.18
청춘: 푸르른 봄  (0) 2015.10.06
로망, 소소하지만 담백한, 달콤한.  (0) 2015.08.21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2  (0) 2015.08.17
당신만이 아는 '그 다음'  (0) 2015.08.06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사회  (0) 2015.08.05
Posted by nakhm999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인간일지라도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많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한 두명과는 관계를 이어나가면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거치는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내내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끊으며 생활을 한다. 


  시간을 흘러보내며서 새로운 사람과 만나기도하며 이전부터 알고지냈던 사람과 멀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또 새로운 시작이 생기며 오지않을 것 같던 이별도 생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별은 언제나 아쉽기 마련이다. 슬프든 슬프지않든 그것이 내게 아름다운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항상 모든 것의 끝은 아쉽다. '조금 더 잘 할수 있었을텐데’ 같은 미련도 남기마련이며 '하지 말았어야할 것을' 같은 후회도 생긴다. 그래서 아마 우리는 <끝>을 생각 할 때에 아쉽고 적적한 듯 싶다. 


  시간을 보내는 것. 굉장히 어려우면서도 달콤한, 그러나 이내 다시 아픈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시간, 돈, 에너지를 쓰면서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그 상대가 바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렴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할지라도 본인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그 사람을 고의든 자의든 언젠가는 이별을 말해야 할 대상이라면 아찔하다. 이러한 아픔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것과 계속해서 해나아가야하는 것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인가보다. 
  그 누구도 이별을 피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작게는 반려동물 크게는 나라를 잃는 것 역시 이별이다. 이별은,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그러한 개념이다. 


  나이가 많이 먹었다고해서, 혹은 많은 사람을 만났다고하여 이별에 대해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때로는 이별에 의연해지고싶다. 봄이가고 여름이 오듯 그렇게 당연스러운 일이기를 바란적도 많다. 그러나 이별은 내게 항상 어려운 일이였다. 나는 시간이 제일 무섭다. 시간을 주고 받고 서로가 공유해나가는 과정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이별의 문턱을 넘어가는 것은 여간 쉽지않은 일이다. 한 대상과 깊은 시간을, 추억을 공유하여 기쁜 것은 그만큼 아플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래서 시간이 무서운 것이다. 즐거운만큼, 행복한 딱 그만큼 마음을 다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두려운 것이다. 


  결국 나는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라는 말을 다시 되뇌이고만다. 낙엽이 지고 하얀 눈이 내리듯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당연하듯이 누군가와 이별을 할 것이다. 상대와 즐거웠던 시간은 어느새 추억이라는 단어로 맺어지게되고 마음 한 편에 묻어둘 시간이 점차 가까워지고있다. 아무리 '삶은 이별의 연습’ 이라는 말을 웅얼거려도 단어의 의미는 상실해지고 만다.
  그러기에 분명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나라는 존재와 내 주위의 상대들은 모두 유한한 존재이다. 끝에는 모두 이별을 할 만남이다. 유한한 존재이기에, 언젠가는 끝을 맺어야 할 존재이기에 함께있는 그 순간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당장 오분 뒤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을 휴대폰 너머로 보는 것은 너무나도 비인간적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고 흐름에 따라 이별을 할 대상들에게 최소한 시공간을 같이 공유하는 그 순간에는 그들과 나에게 더욱 집중하자고 다짐한다.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 전혀 틀림없는 말은 아니다. 모두들 이 세상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인 동안에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또 다른 유한한 모든 존재에게 조금 더 다가가자. 
  이 뜨거운 여름이 다 지나가기 전에 한 번쯤은 손 내밀어보자. 


'매일365 > 매일36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춘: 푸르른 봄  (0) 2015.10.06
로망, 소소하지만 담백한, 달콤한.  (0) 2015.08.21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2  (0) 2015.08.17
당신만이 아는 '그 다음'  (0) 2015.08.06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사회  (0) 2015.08.05
Beyond the BEST SELLER  (0) 2015.08.02
Posted by nakhm999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당신만이 아는 '그 다음'


  나는 책을 읽을 때 공감가는 부분이거나 혹은 내게 깊은 생각을하게 만드는 구절이 있으면 꼭 밑줄을 치고 몇번씩 곱씹어보며 읽어본다. 그래야 내 마음에 훨씬 더 와닿고 사고의 확장을 도와주는 듯 하여 책을 읽을 때마다 왼손에는 꼭 펜을 든다. 물론 나중에 써먹기 위함도 있다.



  어제 김영하의 <검은 꽃>을 다 읽고 오늘 새로 집어든 책은 하야마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이다. 책을 읽던 중 몇 구절이 공감이 가서 밑줄을 쳤는데 같이 읽어보도록 하자. ‘사람들은 긴 학창시절 동안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수없이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올리고 많은 공부를 한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직장을 구하고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도 대부분 인생의 수단을 갖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 다음은’은 가르쳐 주지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다. 그것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공감가는 말이였고, 다시 한 번 나를 각성시키는 구절이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시간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관계를 맺고, 많은 벽에 부딪히기도 하며 성공의 꿀을 맛보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개개인에게마다 다 다르게 다가오고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니 내가 느껴지는게 타인과 다르다고 해서 전혀 실망할 필요 없다. 전 세계의 인구는 70억명이고 70억가지의 관계와 70억가지 이상의 느낌이 있으니 걱정말자.



 우리가 한창 꽃 피울 시절에 학업에 몰두하고 열심히 구직에 나서는 이유도 작가 말대로 인생의 수단을 가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수단이 당위성을 가지고 목적이 되는 것보다는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본인이 만족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이 가져야 할 수단의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남들이 하기에 따라만 하고, 경쟁에 치여 패배자라고 생각한다면 절망을 느낄 것이다. 아마 나락으로,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질 것이다. 
  한 예를 들자면, 교육이 그러하다. 대한민국의 많은 입시생들은 자신이 ‘왜’ 공부하는지 이유를 잘 모른다. 많은 입시생들은 그저 내 짝꿍이 코피를 쏟으며 공부를 하니 본인도 엉겁결에 따라하고, 엄마의 치마폭에 휘둘려 새벽 2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다. 본인이 공부하는 이유를 잘 모르고 대학에만 가면 당연스레 파라다이스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참으로 갑갑하다. 수능이 다가 아니고 SKY대학이 다가 아닌데 그것에 올인하여 꽃다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타깝다. 이유도 모르는 과정 속에서 그저 달콤한 결과만을 바라는 것은 분명 위선이다. 교육은 목적이 아닌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지난 글에서 말한 적이 있다. 교육이 목적이 돼버린 한국 사회에서 남아버린 것은 창의적인 인재가 아닌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낳아진 시기와 분노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될 교육의 암담한 미래가 답답하기만 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장장 12년의 시간을 웃음과 행복함으로 충분히 느낄 권리가 있는 우리의 미래들이 끊임없이 옥상에서 떨어져 내려가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본인이 무엇을 할 때에 가슴이 뛰고 즐거움을 느끼는지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 것은 하야마 아마리의 말처럼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자기가 스스로 찾아야 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테고 또 누구에게는 이미 찾아서 그 길로 걸어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큰 여정을 생각 할 때에 남들보다 잠시 늦는다고 해서 두려워 할 필요 없다. 크고 작은 벽에 부딪히면서 그만큼 내공과 경험이 쌓이는 것이므로 오히려 당당해져라. 




  내게도 ‘그 다음은’ 이라는 것은 막연한 개념이다. 사실 오분 뒤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도 모른다. 단지 주어진 시간안에서, 지금 이 순간을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정말이지 그것이 파라다이스일 것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할 때에 심장이 뛰는지 어렸을 적부터 알아와서 꾸준히 해내가는 중이다. 물론 셀 수 없는 벽에도 부딪혀 보았고, 타인에게서 비난의 눈짓과 헛소리도 많이 들었다. 상처가 되었고, 시간이라는 약을 발라 어느정도 치유가 되었다. 그만큼 성숙해졌고 깊이가 더 해졌으므로 이제는 정말로 내가 하고싶고 가슴이 뛰는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그 다음’을 당당하게 부딪혀 나가는 나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더 자신있게 걸어나갈 것이다. 




 이렇게 작은 나도 할 수 있었고, 해내가고있는 중이다. 그러니 당신들도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의 마음이 조용하게 외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아라. 분명 피가 뜨거워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 소리를 찾기 위해 오늘을 최대한으로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게 박수를 보내며, 꼭 찾기를 기대한다. 




  ‘내가 걸어갈 수 있는건 아직 젊음이 있다는 것, 내가 꿈을 꿀 수 있는건 아직 숨쉬고 있다는 것.’ -버벌진트, <꿈꾸는 자를 위한 시> 중


'매일365 > 매일36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망, 소소하지만 담백한, 달콤한.  (0) 2015.08.21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2  (0) 2015.08.17
당신만이 아는 '그 다음'  (0) 2015.08.06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사회  (0) 2015.08.05
Beyond the BEST SELLER  (0) 2015.08.02
진심을 다해 사랑하라  (0) 2015.07.22
Posted by nakhm999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당신


  나는 올해 1월부터 시내에 있는 한 개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뭔가 카페 알바에 대한 로망이 있기도 했고 정확하게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해야하는 편의점이나 프렌차이즈 카페에서는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것 같기에 일부러 개인 카페에 지원을 했고, 사장님은 채용해주셨다. 처음에야 카페 알바에 대한 헛된 환상과 로망때문에 일하는게 무엇보다 즐겁고 카페에 가는 발걸음은 부스터 달린 듯 마냥 신났었다. 그런데 웬걸, 일하는 날이 많이지면 많아질수록, 다양한 손님을 만나면 만날수록 내 육체의 기가 점점 빨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참 다양한 손님이 많았다. 돈이나 카드를 던지는 것은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그러나 저녁타임에 일해서 그럴지는 몰라도 약주 한 잔 걸치고 오셔서 아가씨와 술 한 잔 하고싶다는 분, 카운터 바로 앞에서 바지춤을 내리시는 분, 음료가 자기 입맛과 안 맞는다며 사장 부르라고 소리치는 분 등 아주 다양한 종류의 손님이 많았다. 그 중 최악은 툭하면 사장 부르라는, 알바생을 아주 종 부리듯 부리는 손님들이 최악이였다. 아마 이 부류는 카페 문을 열자말자 ‘나는 이 곳에 왕으로 왔고, 너는 나를 왕 모시듯이 하여라’ 하는 마인드로 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손님이 왕이다’라는 속담아닌 속담을 혐오한다. 이게 옛 조상들의 권위적이고 사대부적인 태도다 빚어낸 문화라고 본다. 이러한 수직적 구조가 수많은 ‘갑질 행세’의 문제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더 이상 위 아래 구별이 없는, 모두 다 평등한 21세기에 살고있다. 어른이라고 아이보다 더 뛰어나고 대단한 것이 아니고, 돈이 많다고 다른 사람을 무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착각하는 듯 하다. 내가 서울에 좋은 집에서 살기에 나보다 소득이 낮은 사람들을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로 현 사회와 굉장히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서비스직이 사람을 대하는 일이고, 우리 카페 특성상 젊은층보다는 중장년층이 많기 때문에 예의를 갖추고 손님을 받아야하는 것을 알면서도 기본적인 인간성이 제대로 갖춰지지도 않은 어른 손님들을 대할 때에는 당연히 속상할 수밖에 없다. 



  요즘 한창 인터넷에서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 바로 이러한 이기적인 심리에서 나온거라고 생각한다. 
‘택배 기사는 노예가 아닙니다’ 라는 말로 시작되는 글이었는데 읽기도 전에 벌써부터 어떠한 문제인지 짐작을 하게 만든 이 사회가 정말 지긋지긋하다. 글의 내용을 이러했다. 서울에 어떤 아파트에서는 택배 차가 아파트 주민의 안전상에 문제가 된다고 정문부터 걸어오라고 하여 많은 택배기사들이 곤란을 겪고 있어 모든 물품을 반송처리하고,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며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글이었다. 그 한장의 사진을 보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대한민국은 아직도 개발도상국 수준밖에 안되는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이 얼마나 악한지 느끼게 해주었다. 





  정말 더운 여름날씨이다. 밖에 아무것도 안하고 서있기만 해도 땀이 비오듯 흐르는 마당에 정문부터 그 무거운 박스들을 들고 걸어오라는 주민들의 갑질행세가 참으로 밉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배송비 2500원에 소비자는 택배기사를 노예 부리듯이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나는 택배를 시킬 때마다 항상 전화로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하며 웃으며 통화하려고 노력한다. 나도 이렇게 힘들고 더운 마당에 밖에서 일하고 여기저기 운전하시는 그 분들은 더 힘들걸 알기에 그러는 것이다. 좋은 말 한마디도 부족한데 걸어오고 가라니, 참으로 바닥으로 떨어진 시민의식이고 대한민국 사회이다. 
  그렇게 갑질을 하는 잘난 주민들도 분명 어디선가는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이는 처지일텐데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이런 못된 마인드가 뿌리 뽑혀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인간이다. 저 잘난 주민들도 한 인간이고 택배기사들도 한 인간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기에 서로를 위해주어야한다. 단지 소득수준, 직업, 집의 평수로 사람을 차별하는 시대는 벌써 지나갔다. 아무리 대한민국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어도 개개인의 시민의식이 높아져야 정말 사회가 변할 수 있다고 본다. 그 곳이 카페든, 집이든, 회사에서든 수직적 구조로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아닌 수평적 구조로 살아야 한다. 같은 인간이고, 다 같이 한 사회에서 공생하기 위해서는 수평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각 개개인에게는 타인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그런 권한이 전혀 없다. 



  나는 택배기사들의 파업을 존중한다. 오히려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그들이 부럽기까지하다. 그들은 그들의 소중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고, 부당한 요구에 파업을 할 권리도 당연 있다. 단 돈 2500원에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되고 그 돈에 착취를 할 수 없다. 이번 사건으로 통해 그 아파트 소수의 주민들이 반성을 하고 각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 인간의 아주 이기적인 욕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지 알기를 바란다. 



  또한, 카페를 가든 어디를 가든 손님이 왕이라는 마인드도 좀 버렸으면 한다. 그런 마인드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알바생들에게 수고하라는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 손님이 왕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고, 카운터 앞에 서있는 직원도 같은 인간이다. 우리 인간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관계를 맺고, 인간적으로 살아가자.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너무 멀고 험하다.

  


'매일365 > 매일36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2  (0) 2015.08.17
당신만이 아는 '그 다음'  (0) 2015.08.06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사회  (0) 2015.08.05
Beyond the BEST SELLER  (0) 2015.08.02
진심을 다해 사랑하라  (0) 2015.07.22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0) 2015.07.20
Posted by nakhm999

댓글을 달아 주세요

  Beyond the BEST SELLER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에는 계곡에 놀러가거나 밖에서 더위를 만끽하는 것 보다는 백화점, 공공건물 혹은 서점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서 무더위를 피하는 것이 상책인 듯 하다. 그래서 나는 한여름에는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백화점은 근처에 없어서 못가는 것이고 공공건물은 사람이 너무 많다. 결국 항상 내가 선택하는 곳은 바로 서점이다. 서점에서는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최대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기에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서점을 빙 둘러보면 가장 맨 앞 진열장에는 ‘베스트 셀러’ 책들이 자리잡고있다. 그 뒤로는 각각이 분야에 맞게 책들이 꽂혀져있다. 베스트 셀러 코너가 가장 맨 앞에 위치해있기에 우리는 그 코너에 시선을 가장 먼저 뺏긴다. 베스트 셀러 코너를 잘 살펴보면 자기계발서 와 각종 성공에세이는 즐비한 반면에 고전과 순수문학 작품들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즉, 한국 도서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자기를 계발해서 힐링하고 성공하자! 는 책이다. 




  베스트 셀러라는 것은 정해진 기간동안 부수를 가장 많이 올린 책을 말한다. 한 때,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베스트 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적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별 내용은 없고, 지금 당장 힘든 20대 청춘들에게 기득권인 작가가 '힘들겠지만 힘내, 근데 그건 우리 탓이 아니라 너네들의 문제란다, 우리와 사회의 탓이 아닌 개인적인 문제니까 알아서 잘 하면 이겨낼 수 있을거야!' 라는 뉘앙스를 짙게 풍기는, 한마디로 위선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이 베스트 셀러 목록에 있는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20대에게 고작 한다는 말이 힘내, 더 열심히 하면 돼 라는 말을 하면서 손목에는 거액의 시계를 찬 작가의 책이 우리 청춘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자체가 답답하고 씁쓸했었다. 누군들 그런 소리를 못하겠는가, 충분히 다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은 뭔가 다르지않을까싶어서 구입했는데도 같은 말뿐이라니, 그렇게해서 결국 좋은건 인세로 돈을 버는 작가뿐만이 아닌가! 아프면 청춘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아프면 환자지 청춘이 아니란말이다. 




  베스트 셀러라는 목록을 만들어내는 것은 출판사의 영향도 크다. 출판사는 많은 판매를 목적으로 임의로 책을 정하여 베스트 셀러라고 옷을 입혀 도서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정말 많은 부수를 올려 베스트 셀러가 있을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출판사의 입맛대로 고른 것이다. 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치고 삶에 유용한 책은 한 쪽에 내팽겨지고 인기만을 위한 책들이 출판사의 이익을 위해서 계획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읽고싶은 마음이 반감될 것이다. 



  
  나는 베스트 셀러를 선호하지 않는다. 카탈로그에 베스트 셀러라고 써있으면 보나마나 자기계발서에 겉핥기식의 위로밖에 더 해주는 책이겠어? 라고 생각하게된다. 이것은 나의 성격이 배배 꼬인 것이 아니라 뻔한게 너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단지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다. 좋은 책은 독자에게 영향을 끼치고 사고할 수 있게 만드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텍스트를 그저 눈으로 읽고 머리 밖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것은 시간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책은 읽는이에게 무언가 남겨야한다. 한 권의 책, 한 줄의 글을 읽더라도 마음 속에 깊게 와닿고 앞으로의 행동에 변화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생각을 낳아야하고 독자는 책에서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독자는 읽는내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하고 대답을 찾아야하는 능동적인 행위를 해야한다. 단지 베스트 셀러라는 이름만으로 책을 고르고 남들이 읽기에 나도 따라 읽는 수동적인 행위는 오히려 안 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능동적으로 책을 읽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은 읽는 것은 앉은 자리에서 후딱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곱씹어보며 하루 이틀 혹은 한달이 걸릴정도로 오래 걸리는 일이다. 이렇게 긴 시간동안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해야한다. 그러나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의미와 주제를 이해하여 삶에 적용시켜 변화를 주어야하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동안 많은 양의 책을 읽음에 의해 능동적인 독서 습관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책을 읽어야하는가?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베스트 셀러라는 물고기만 낚아채지 않기를 바란다. 낚시대를 잡은 이는 고전이라는 물고기를 잡아야한다. 고전을 단지 읽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의 향연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100년, 200년 전에 쓰여진 글이 지금 세대에게까지 읽히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전 속에는 삶의 지혜와 영혼이 담겨있다. 단순한 힐링으로 한 마디 건네는 것이 아닌 진중하고 귀감이 되는 구절들이다. 고전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정해주진 않지만 그 갈피를 잡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꾸준히 고전을 읽어나가면 분명 사고하는 방식이 예전과는 달라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전까지는 막연하게 독서를 하였다면 이제는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작가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그에대한 대답을 찾기위해 책뿐만이 아닌 삶에서도 행동하게 될 것이다.




  나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고전이 차지하는 자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많은 독자들이 <1984>를 읽고 현 사회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가 되어 사랑의 가치와 낭만에 대해 느끼며 <논어>를 읽고 삶에 귀감이 되는 구절들을 가슴깊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인기있는 자기계발서는 가볍게 기분전환 겸 읽고, 가방에는 고전과 정말 당신에게 영감이되고 깨어있는 사고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책을 가지고 다니길 바란다. 



  삶의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베스트 셀러에 가려져 뒤편에 처박혀있는 고전 속에서 인생의 진정한 선배들이 오랜 시간동안 고민하여 써내려 간 한 구절 한 구절 안에 진리는 녹아들어있다. 
  조만간 서점에 간다면, 베스트셀러는 잠시 접어두고 고전의 향기에 심취해보라. 분명 이전과는 다른 당신을 보게 될 것이다. 


 

 책을 다시 읽게 되면 당신은 그 책 속에서 전보다 더 많은 내용을 발견하지는 않는다. 단지 전보다 더 많이 당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클리프턴 패디먼


'매일365 > 매일36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만이 아는 '그 다음'  (0) 2015.08.06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사회  (0) 2015.08.05
Beyond the BEST SELLER  (0) 2015.08.02
진심을 다해 사랑하라  (0) 2015.07.22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0) 2015.07.20
진짜 공부가 무엇인가요?  (0) 2015.07.15
Posted by nakhm999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진심을 다해 사랑하라



  연애와 사랑의 차이점을 콕 집어서 구분해내기란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무엇이 연애고, 사랑이고, 인연과 연인인지 때로는 내 머리를 과부하 걸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연애든 사랑이든 두 사람의 ‘끌림’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두 사람만 아는 묘한 매력 속에서 싹이 터서 관계가 시작되어 밥도 먹고 가끔은 영화도 보고 또 가끔은 다투기도하며 둘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연애’ 라고 생각해보면, ‘사랑’은 어떠한 모습을 띄어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사랑을 아가페, 필리아, 스톨케, 에로스 4가지로 구분하였다. 첫째로 아가페는 무조건적인 주는 사랑이다. 예를 들어 신과 부모님같이 사랑하는 이에게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필리아는 오직 한사람에 의한 종교적인 사랑이고 스톨케는 많은 관계에 의한 친구, 이웃, 연인 등 정으로 주고받는 사랑이며 마지막 에로스는 가장 본능적이고 육체적인 순수한 사랑이라고 한다. 
  저들이 나눈 사랑을 확실하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대략적으로는 크게 저러한 양상을 띄고 사랑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사랑은 한가지의 확실하고 절대적인 것이 아닌 충분히 유동성있고 다양한 관계에서 사랑은 나눠진다. 

  한 때, 1년 좀 넘게 연애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모든 시간과 공간이 그 친구를 향해 돌아갔고 나의 시간과 에너지, 돈은 우리의 세계를 지속시키는데에 총동원 되었다. 그게 다였고, 그게 진리인줄만 알았다. 내 모든 것을 공유하면 영원할줄만 알았던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예상하는대로 10대, 갓 20대가 흔히 하는 착각. ‘내 사랑은 영원할거야’ 라는 것은 전혀 영원하지 않은 사랑으로 끝이났다. 서로가 서로를 받아주기에는 둘의 그릇이 꼭 맞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고보면 참 많이 아파했었다. 여담이지만 당시에는 학생이라 술로 고통을 해소하지 않은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학교 운동장을 엉엉 울며 수없이 돌고 또 돌고, 그 친구 집 근처에서도 울어보고 메달려도보았다. 체중도 39kg까지 빠지기도 하고 수없이 울고 또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그제야 알았다. 연애는 둘이서 하는 것이지만 사랑은 혼자만이라도 할 수 있다는것을. 같이 손잡고 걷지는 못하더라도 추억 속에서 나란히 길을 걸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렇게 점차 희미해져갔고 그때는 생각만해도 한 편이 아려오던 것이 이제는 웃으며 추억으로 얘기할 수 있게됐다. 


  누군가는 그런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였다고. 그러나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한다. 연인관계는 둘만 아는 것이고, 또한 상대가 그때가 혹은 이제 나를 증오한다할지라도 본인이 그 시절을 생각할 때에 마음 한 편에 에너지가 되고 그 순간에 충분히 진심을 다했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그래서 어려운 것일까, 나는 연애는 많이하고싶지만 사랑은 되도록 적게 하고싶다. 누군가에게 온 마음과 시간을 쓴다는 것이 이제는 어렵고 귀찮게까지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시 사랑을 찾아 어디든지 갈 것이다.
  적다면 적게 느껴지는 1년이란 시간동안 많이 배웠고 성장했다고 느낀다. 반년동안 나름 꽤 아파하고 절망했기에 더이상의 미련은 없다. 그 시간속에서 잘 이겨내온 내 존재에게 오히려 박수를 쳐주고싶다.

  
  너무나도 일회성이 판치는 세상이다. 참 쉽게 만나 후다닥 감정을 소모하고 뒤돌아 칼을 꽂는 현대인들의 ‘사랑’을 나는 그닥 좋게 보지는 않는다. 참으로 일회용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이 또한 사랑이다. 내가하는 사랑만이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타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가치관에 따라 사랑하고 이별한다. 이 세상에 사랑이란 것의 정답이 어딨겠으며 정의를 논하는 것이 오히려 무의미하다. 다만 나는 우리가 ‘진심을 담아’ 사랑을 하는 그런 멋있는 인간이 되었으면 한다. 진심은 언제 어디서든 통한다. 설사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진정 사랑하고 아파했다면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소모적이고 일회성 짙은 사랑보다는 온 마음과 시간을 다해 사랑한다면 우리는 한층 더 성숙해질 것이다. 


  사랑은 한 사람의 세계를 뒤흔드는 그런 꽤 멋진 일이다. 그것이 설령 후에 눈물을,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동반할지라도 고통 속에서 배우면 된다. 슬프고 눈물나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오늘 하루를 미소지으며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아이리스 머독

Posted by nakhm999
TAG 사랑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表现’의 뜻을 한글로 풀으면 ‘겉으로 드러낸다.’ 라는 뜻이다. 다시말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가치관을 밖으로 꺼내어 말하거나 행동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개개인의 생각과 가치관을 상대와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각각의 생각들이 잘 맞아 이뤄지면 친구, 연인 혹은 고용관계 등 여러가지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때로 충돌되면 폭력, 억압 등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개인사이에서 표현이 충돌되면 단순한 언쟁이나 심하면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국가적으로 발생할 때에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예를들어 이슬람 극우주의단체인 IS단체와 다른 여러 국가의 갈등이나 한국과 북한의 이념갈등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 2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과 출판의 자유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을 명시한다. 즉,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살아가는 동안 모든 말과 행동의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는 뜻이다. 
  나는 ‘자유’라는 가치관을 가장 기본으로 생각한다. 자유가 있기에 살아갈 수 있으며 행동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21세기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 국민으로서 ‘자유’는 억압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지켜야 할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표현의 자유는 과연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 것일까, 혹은 나의 표현이 상대의 존엄을 해치는 경우도 ‘자유’라는 이름하에 보호받을 수 있는걸일까.
  한 예를 들어서 생각해보자. 모두들 ‘일간 베스트’ 흔히 일베라고 불리우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알 것이다. 이전부터 자주 사회에 문제를 발생시켰으며 지극히 파시즘적 성격을 지닌 집합소이다. 세월호 참사 실종자들을 어묵에 비하하거나 전 대통령을 모욕하고 인간 수준 이하의 발언들을 서슴없이 한다. 자신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비슷한 그들이 모여 일베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사회 곳곳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이 공동체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나는 일베충으로 불리우는 사회악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발언이나 행위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인정해줘야하는 것인가? 우리는 듣고싶은 말만 듣기 위해서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사회에서는 나의 의견과 표현이 소중하듯이 당신들의 표현도 소중하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든, 아니든 우선은 말할 권리와 자유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표현이 자유는 중시하되 그 결과는 각자가 책임져야 할 짐이다. 일베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묵이라고 비하하는 그 과정은 그들의 자유이다. 그러나 그 후에 오게되는 사회적인 비판과 시선, 심각하다면 법적 문제까지는 그들이 당연하게 떠안아야 할 것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도 비슷한 맥락이다. 히틀러는 게르만족이 아닌 유대인들을 말살시키고자하는 광적인 자기 표현을 하였고 당시의 독일 국민들은 그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분명 히틀러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살인, 집단 학살을 실행했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 전 세계로부터 독일은 비난을 받았고 그 책임은 후대에게까지 무거웠다. 표현을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후에 오는 모든 것은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표현의 자유는, 이렇기에 어려운 것이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고 사회 전체에 악이 된다면 이것은 정당화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법은, 사회는 그 입을 막을 수가 없기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고 충돌하는 것이다. 결국 도덕이 우선이냐, 자유가 우선이냐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도덕의 베이스 위에서 자유를 행한다면 분명 제한이 생겨 자기 검열과 사회적 시선 속에서 말을 내뱉어야 하기에 이것은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없고 자유의 기본 위에 표현을 한다면 분명 일베나 홀로코스트 같은 오용과 남용의 결과가 범람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갖춰야 할 태도는 바로 건전한 시민의식이다.
  만약 옳은 교육을 받고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제정신으로는 인격을 훼손하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비난이 아닌 비판을 지향해야 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무차별적으로 힐난하는 자세는 논리적이지도 않고 설득할 수 없다. 마치 폭력과 같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비난이 아닌 비판이다. 충분한 논리적 근거를 활용하여 비판을 하는것이 진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무차별적인 폭력과 비난도 역시 정당화 될 수 없다. 우리는 살아생전 일베와 같은 종자들을 떼어낼 수 없기에 상생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무차별적인 비난과 폭력성을 행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고, 도덕을 보존하며 자유를 실행 할 수 있는지를 그들뿐만이 아닌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참교육 위에서 피어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않는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잃어가고,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시스템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일베충들을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악으로 태생된 종자들이 아니라 이 사회에, 시스템에,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버린 하나의 암세포이다. 분명, 암세포는 신체를 옥죄이고 병들게 한다. 이들또한 방치한다면 사회 전체에 카오스를 야기 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 말하며 글을 쓸 수 있고 나의 가치관을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에 언제 어디서도 표현의 자유를 지켜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이길 포기하는 언행은 스스로 제한할 것이다. 모든 언행에 제한을 두란 말이 아니다. 책임지지 못할 자유는 미리 양보하는 것이다. 


  자유는 책임이 없을 때에 방종이 되는 것이다. 이 방종은 커가면서 암세포가 될 수 있다. 



  자유는 사람의 권리이지만 그 실행을 위해서는 사람이 더욱 위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안토넬리 


Posted by nakhm999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