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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365/매일365

인간에게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을까

인간에게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을까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생을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삼신할매의 랜덤으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이가 있는 반면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출생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우리는 탄생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죽음은 약간 다르다. 이 땅에 태어난 이상 죽음은 언제든지 선택 '가능'하다. 
 삶에는 시작이 있듯 당연히 끝도 있기 마련이다.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출생과는 다르게 죽음은 웬만한 질병이나 우연한 사고로 사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에게 죽음은 ‘선택’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어째서 죽음에게는 관대하지 못하는가. 인간에게는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음과 동시에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있다.


   죽는다, 라는 것은 두가지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 생물학적 입장에서 보면 심장이 더이상 뛰지않는걸 죽음이라 말하는 반면 내가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뇌가 뛰지 않는 것이 죽은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는 점은 ‘이성’의 유무이다. 이성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이성은 곧 인간성으로 연결된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며, 살아간다고 느끼게 하는 것, 바로 사고하는 힘이다. 내가 생명이 붙어있다고 하더라도 생각하지않고 행동하지 않으며 느끼지 못하는 삶이 죽어버린 삶이라고 하지 못할게 무엇인가. 

   본론인 안락사에 대해서 들어가보자. 참고로 본론에 제시하고 있는 안락사의 전제는 '이성이 있어 안락사를 스스로 결정한 상태의 환자들'을 예로 들겠다.
  심장은 여전히 쿵쾅대고 있지만 아무런 사고를 할 수도 없고 움직일 수 없이 병상 위에 누워만있는 환자들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들의 삶은 사는게 사는게 아닌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에게 짐을 덜어주고싶고 자기로부터 해방하고 싶은 욕구만 높아져 갈 것이다. 이들에게 본인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법적으로 막아버리는 것이 과연 그들은 위한 일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 책임은 무엇인가?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 자체가 책임이다. 삶의 권리는 개개인에게 있지 국가나 정부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원한다면 죽음을 선택할 권리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의 문턱 앞에 온 사람들에게 시간을 연명한다는 것 자체로 그들에게는 짐이다. 더욱이 그것을 바라보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흔히 안락사를 합법화하면 생명경시 풍조가 생겨 사회 전반에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꽤 비약적인 주장이라 생각한다. 예를들면 역사적으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면 사회 전체에 혼란이 올 것이니 여성에겐 참정권을 주지 말자는 의식이 지배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여성 혹은 흑인, 당시의 사회적 약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을 때 정말로 사회가 카오스로 변했을까? 전혀 아니다. 지금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되는 비약적인 논리라고밖에 할 수 없다.
또한 안락사를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자, 그럼 반대로 생각해서 죽지못해 호흡기를 달고 사는 사람에게 희망고문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하는 것이 더 비윤리적인 행동이 아닌가? 오히려 이것이 죽음으로 가는 자연스러운 길을 막는 비윤리적이고 부자연스러운 행위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안락사를 합법화한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잃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존엄하게 생을 보낼 수 있다면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강한 애착을 가졌고 남은 생을 편히 보내려는 자에게는 편히 죽을 권리가 있고, 또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종식시키려하는 자세는 일생일대의 가장 존엄한 결단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부여받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생애동안 충분히 존엄하게 살아야하고 마무리도 잘 끝마쳐야 인간답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삶의 순간 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끝 마무리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을 아무리 다채롭게 보냈다 하여도 생의 끝에서 색채가 희미하다면 그것은 슬플 것이다. 결국 잘 '사는'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것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존엄한 인간에게는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존엄한 권리가 분명 있는거다. 

  실제로 호스피스들은 죽음 직전의 환자들이 약물투여로 생을 지속시키고 싶지는 않아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편하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려 한다는 것이다. 많은 시간을 힘든 치료와 약물의 고통속에서 보내온 그들에게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죽음에 한 발짝 더 가까이 왔다. 금수저라고 불로장생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애의 끝에는 죽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불행히 사고나 질병으로 죽는 일이 아니라면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기에 그 권리를 잘 쓰도록 하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이기에 최대한 잘 죽도록 하자. 안락사, 말 그대로 편안하고 즐거운 죽음이다. 나와 시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 속에서 가장 나다울 수 있었고 그것을 기억해주는 존재가 나 이외의 한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그것은 잘 죽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2003년 사스퇴치운동에 앞장섰던 저명한 전염질병 분야 권위자인 캐나다 도날드 로 박사가 뇌종양으로 떠나기 8일 전에 남겨놓은 동영상에서 한 말을 인용하겠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고 의사의 도움으로 평화롭게 죽음을 맞기를 원하므로 캐나다에서 안락사가 합법화 되어야 합니다.
안락사 반대론자들이 내 몸 안에서 24시간만 살아보면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