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5.08.19 무라카미 하루키
  2. 2015.08.06 당신만이 아는 '그 다음'
  3. 2015.08.02 Beyond the BEST SELLER
  4. 2015.07.10 책을 읽지않는 당신들과 국가

春上村树,Murakami Haruki, 무라카미 하루키



  내게는 약간의 뒷북을 치는 모습이 종종 있다. 대화에서는 별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의외로 책이나 작가, 음악 등에서 뒷북을 둥둥 울린다. 예를 들어 가수 리쌍의 <TV를 껐네> 같은 노래도 나만 아는 노래라고 생각하여 혼자 회심의 미소를 지은적이 있다만 사실 후배도 친구도 심지어 나이가 있는 카페 사장님까지도 아는 그런 흔한 노래였다는 것에 다소 충격을 먹었다. 
  음악은 오히려 약과다. 책이나 작가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북을 크게 울린다. 오늘 말하고싶은 이가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사실 나는 일본 소설은 심히 감성적이고 유치할 것 같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일본에서 출간한 책들은 손에 잡지 않았었다. 당연히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의 이름은 듣도 보도 못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하루키 그는 일본과 한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며 그의 판권을 사기위해 우리나라 출판사에서는 수억의 돈을 쏟아붓기까지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것도 모른채 그냥 '일본의 흔하디 흔한 글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니 알량한 지식에 창피하기만했다. 


  역시 인연은 언젠간 만난다더니, 사실 이제는 어떻게 하루키의 책을 읽게 되었는지 잘 기억은 안나다만, 가장 먼저 읽게 된 책은 그 이름도 길고 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였다. 친구가 그 책을 읽고있기에 뭔지 모르는 시샘이 나서 뺏어서 읽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 같다. 그렇게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만나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괜히 생색내고싶고 기분좋은 그런 작가로 내게 다가온다. 세상에 태어나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그렇게 무언가에 빠져들게 만든 작가는 결단코 처음으로 하루키였다. 그의 문체나 소설 속 시간의 흐름이라든가 등장인물들이 가지고있는 그들만의 스토리와 각각의 매력이 나를 매혹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여담이지만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이 1Q84에 등장한 남자 주인공 ‘덴고’라는 것도 나의 애정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시간과 상황이 맞들어가면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 두꺼운 <1Q84> 전편도 바쁜 시간을 짬내어 일주일도 안되서 다 읽었고 노르웨이의 숲이나 해변의 카프카는 하루 안에 다 읽었다. 다음 한 장이, 다음의 한 줄이 나를 계속해서 읽게 나가게 하였다. 특히 아직도 인상깊은 경험은 <1Q84>의 아오마메가 한 종교단체의 보스를 죽이기 위해 같은 호텔 방 안에서 침착히 침을 놓으려는 장면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소파에 편히 누워서 읽다가 사건이 진행될수록 점점 자세를 고쳐 앉아서 읽던 나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하였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완독을 했을 때는 나도모르게 괜히 뿌듯하다. ‘이번 소설도 다 읽어냈구나!’하는 그런 스스로의 자부심도 있다. 하루키의 장편소설은 거의 다 읽었다. 중간에 책이 없어서 미처 못 읽은 <태엽감는 새>의 3,4편은 조만간 읽을 것이다. 그의 에세이나 단편 소설은 한숨에 읽어내려갔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의 단편소설 몇개가 있는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중국행 슬로보트>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는 하루키의 처녀작이라 그런가 무언가 약간 허술하고 엉성하다. 살짝은 우습기까지한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그곳에서 나온다. 정갈되지않은, 청춘의 한 자락을 보여주고 회상시킨다. 나는 하루키의 그런 점을 좋아한다. 노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감성을 굉장히 잘 드러내고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한 청춘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끝없이 상상을 할 수 있고 나의 과거를 되돌아 본다. ‘그 때의 나라면’ 하는 생각도 한다.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조각조각의 과거가 현재의 나를 만들었으니 무시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과거에 내가 다르게 행동하였다면 어떠한 모습의 ‘지금’이 있을지 궁금하기도하다. 
  더이상 하루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든 한 물 간 작가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이, 그가 생각한 글의 부분이 내게로 와 나를 흔들었다는 것이고, 영향받았다는 점이다. 그가 창작한 모든 소설과 에세이를 다 읽고싶고,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길 바란다. 한 독자로서 그의 책들을 계속 읽어나갈 것이고 응원할 것이다. 
  뒷북을 둥둥 울리긴 울렸었다. 설령 뒷북일지라도 누구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싶어하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이러한 두서없는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쓰고싶었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뜩 생각났다. 또 한 구절을 싣고싶다. 

    
 우리는 그 때 만나야했기 때문에 만난 것이고, 행여 그 때 만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다른 어디에선가 만났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청춘감성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덜컥, 기대期待하다  (0) 2015.08.27
1.술  (0) 2015.08.24
무라카미 하루키  (0) 2015.08.19
바람이 선선하다.  (0) 2015.08.18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  (0) 2015.08.15
가능하다면 영원히 자고싶다  (0) 2015.07.09
Posted by nakhm999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당신만이 아는 '그 다음'


  나는 책을 읽을 때 공감가는 부분이거나 혹은 내게 깊은 생각을하게 만드는 구절이 있으면 꼭 밑줄을 치고 몇번씩 곱씹어보며 읽어본다. 그래야 내 마음에 훨씬 더 와닿고 사고의 확장을 도와주는 듯 하여 책을 읽을 때마다 왼손에는 꼭 펜을 든다. 물론 나중에 써먹기 위함도 있다.



  어제 김영하의 <검은 꽃>을 다 읽고 오늘 새로 집어든 책은 하야마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이다. 책을 읽던 중 몇 구절이 공감이 가서 밑줄을 쳤는데 같이 읽어보도록 하자. ‘사람들은 긴 학창시절 동안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수없이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올리고 많은 공부를 한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직장을 구하고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도 대부분 인생의 수단을 갖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 다음은’은 가르쳐 주지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다. 그것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공감가는 말이였고, 다시 한 번 나를 각성시키는 구절이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시간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관계를 맺고, 많은 벽에 부딪히기도 하며 성공의 꿀을 맛보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개개인에게마다 다 다르게 다가오고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니 내가 느껴지는게 타인과 다르다고 해서 전혀 실망할 필요 없다. 전 세계의 인구는 70억명이고 70억가지의 관계와 70억가지 이상의 느낌이 있으니 걱정말자.



 우리가 한창 꽃 피울 시절에 학업에 몰두하고 열심히 구직에 나서는 이유도 작가 말대로 인생의 수단을 가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수단이 당위성을 가지고 목적이 되는 것보다는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본인이 만족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이 가져야 할 수단의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남들이 하기에 따라만 하고, 경쟁에 치여 패배자라고 생각한다면 절망을 느낄 것이다. 아마 나락으로,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질 것이다. 
  한 예를 들자면, 교육이 그러하다. 대한민국의 많은 입시생들은 자신이 ‘왜’ 공부하는지 이유를 잘 모른다. 많은 입시생들은 그저 내 짝꿍이 코피를 쏟으며 공부를 하니 본인도 엉겁결에 따라하고, 엄마의 치마폭에 휘둘려 새벽 2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다. 본인이 공부하는 이유를 잘 모르고 대학에만 가면 당연스레 파라다이스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참으로 갑갑하다. 수능이 다가 아니고 SKY대학이 다가 아닌데 그것에 올인하여 꽃다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타깝다. 이유도 모르는 과정 속에서 그저 달콤한 결과만을 바라는 것은 분명 위선이다. 교육은 목적이 아닌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지난 글에서 말한 적이 있다. 교육이 목적이 돼버린 한국 사회에서 남아버린 것은 창의적인 인재가 아닌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낳아진 시기와 분노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될 교육의 암담한 미래가 답답하기만 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장장 12년의 시간을 웃음과 행복함으로 충분히 느낄 권리가 있는 우리의 미래들이 끊임없이 옥상에서 떨어져 내려가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본인이 무엇을 할 때에 가슴이 뛰고 즐거움을 느끼는지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 것은 하야마 아마리의 말처럼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자기가 스스로 찾아야 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테고 또 누구에게는 이미 찾아서 그 길로 걸어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큰 여정을 생각 할 때에 남들보다 잠시 늦는다고 해서 두려워 할 필요 없다. 크고 작은 벽에 부딪히면서 그만큼 내공과 경험이 쌓이는 것이므로 오히려 당당해져라. 




  내게도 ‘그 다음은’ 이라는 것은 막연한 개념이다. 사실 오분 뒤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도 모른다. 단지 주어진 시간안에서, 지금 이 순간을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정말이지 그것이 파라다이스일 것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할 때에 심장이 뛰는지 어렸을 적부터 알아와서 꾸준히 해내가는 중이다. 물론 셀 수 없는 벽에도 부딪혀 보았고, 타인에게서 비난의 눈짓과 헛소리도 많이 들었다. 상처가 되었고, 시간이라는 약을 발라 어느정도 치유가 되었다. 그만큼 성숙해졌고 깊이가 더 해졌으므로 이제는 정말로 내가 하고싶고 가슴이 뛰는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그 다음’을 당당하게 부딪혀 나가는 나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더 자신있게 걸어나갈 것이다. 




 이렇게 작은 나도 할 수 있었고, 해내가고있는 중이다. 그러니 당신들도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의 마음이 조용하게 외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아라. 분명 피가 뜨거워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 소리를 찾기 위해 오늘을 최대한으로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게 박수를 보내며, 꼭 찾기를 기대한다. 




  ‘내가 걸어갈 수 있는건 아직 젊음이 있다는 것, 내가 꿈을 꿀 수 있는건 아직 숨쉬고 있다는 것.’ -버벌진트, <꿈꾸는 자를 위한 시> 중


'매일365 > 매일36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망, 소소하지만 담백한, 달콤한.  (0) 2015.08.21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2  (0) 2015.08.17
당신만이 아는 '그 다음'  (0) 2015.08.06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사회  (0) 2015.08.05
Beyond the BEST SELLER  (0) 2015.08.02
진심을 다해 사랑하라  (0) 2015.07.22
Posted by nakhm999

댓글을 달아 주세요

  Beyond the BEST SELLER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에는 계곡에 놀러가거나 밖에서 더위를 만끽하는 것 보다는 백화점, 공공건물 혹은 서점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서 무더위를 피하는 것이 상책인 듯 하다. 그래서 나는 한여름에는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백화점은 근처에 없어서 못가는 것이고 공공건물은 사람이 너무 많다. 결국 항상 내가 선택하는 곳은 바로 서점이다. 서점에서는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최대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기에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서점을 빙 둘러보면 가장 맨 앞 진열장에는 ‘베스트 셀러’ 책들이 자리잡고있다. 그 뒤로는 각각이 분야에 맞게 책들이 꽂혀져있다. 베스트 셀러 코너가 가장 맨 앞에 위치해있기에 우리는 그 코너에 시선을 가장 먼저 뺏긴다. 베스트 셀러 코너를 잘 살펴보면 자기계발서 와 각종 성공에세이는 즐비한 반면에 고전과 순수문학 작품들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즉, 한국 도서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자기를 계발해서 힐링하고 성공하자! 는 책이다. 




  베스트 셀러라는 것은 정해진 기간동안 부수를 가장 많이 올린 책을 말한다. 한 때,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베스트 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적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별 내용은 없고, 지금 당장 힘든 20대 청춘들에게 기득권인 작가가 '힘들겠지만 힘내, 근데 그건 우리 탓이 아니라 너네들의 문제란다, 우리와 사회의 탓이 아닌 개인적인 문제니까 알아서 잘 하면 이겨낼 수 있을거야!' 라는 뉘앙스를 짙게 풍기는, 한마디로 위선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이 베스트 셀러 목록에 있는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20대에게 고작 한다는 말이 힘내, 더 열심히 하면 돼 라는 말을 하면서 손목에는 거액의 시계를 찬 작가의 책이 우리 청춘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자체가 답답하고 씁쓸했었다. 누군들 그런 소리를 못하겠는가, 충분히 다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은 뭔가 다르지않을까싶어서 구입했는데도 같은 말뿐이라니, 그렇게해서 결국 좋은건 인세로 돈을 버는 작가뿐만이 아닌가! 아프면 청춘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아프면 환자지 청춘이 아니란말이다. 




  베스트 셀러라는 목록을 만들어내는 것은 출판사의 영향도 크다. 출판사는 많은 판매를 목적으로 임의로 책을 정하여 베스트 셀러라고 옷을 입혀 도서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정말 많은 부수를 올려 베스트 셀러가 있을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출판사의 입맛대로 고른 것이다. 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치고 삶에 유용한 책은 한 쪽에 내팽겨지고 인기만을 위한 책들이 출판사의 이익을 위해서 계획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읽고싶은 마음이 반감될 것이다. 



  
  나는 베스트 셀러를 선호하지 않는다. 카탈로그에 베스트 셀러라고 써있으면 보나마나 자기계발서에 겉핥기식의 위로밖에 더 해주는 책이겠어? 라고 생각하게된다. 이것은 나의 성격이 배배 꼬인 것이 아니라 뻔한게 너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단지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다. 좋은 책은 독자에게 영향을 끼치고 사고할 수 있게 만드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텍스트를 그저 눈으로 읽고 머리 밖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것은 시간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책은 읽는이에게 무언가 남겨야한다. 한 권의 책, 한 줄의 글을 읽더라도 마음 속에 깊게 와닿고 앞으로의 행동에 변화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생각을 낳아야하고 독자는 책에서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독자는 읽는내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하고 대답을 찾아야하는 능동적인 행위를 해야한다. 단지 베스트 셀러라는 이름만으로 책을 고르고 남들이 읽기에 나도 따라 읽는 수동적인 행위는 오히려 안 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능동적으로 책을 읽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은 읽는 것은 앉은 자리에서 후딱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곱씹어보며 하루 이틀 혹은 한달이 걸릴정도로 오래 걸리는 일이다. 이렇게 긴 시간동안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해야한다. 그러나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의미와 주제를 이해하여 삶에 적용시켜 변화를 주어야하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동안 많은 양의 책을 읽음에 의해 능동적인 독서 습관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책을 읽어야하는가?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베스트 셀러라는 물고기만 낚아채지 않기를 바란다. 낚시대를 잡은 이는 고전이라는 물고기를 잡아야한다. 고전을 단지 읽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의 향연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100년, 200년 전에 쓰여진 글이 지금 세대에게까지 읽히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전 속에는 삶의 지혜와 영혼이 담겨있다. 단순한 힐링으로 한 마디 건네는 것이 아닌 진중하고 귀감이 되는 구절들이다. 고전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정해주진 않지만 그 갈피를 잡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꾸준히 고전을 읽어나가면 분명 사고하는 방식이 예전과는 달라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전까지는 막연하게 독서를 하였다면 이제는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작가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그에대한 대답을 찾기위해 책뿐만이 아닌 삶에서도 행동하게 될 것이다.




  나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고전이 차지하는 자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많은 독자들이 <1984>를 읽고 현 사회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가 되어 사랑의 가치와 낭만에 대해 느끼며 <논어>를 읽고 삶에 귀감이 되는 구절들을 가슴깊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인기있는 자기계발서는 가볍게 기분전환 겸 읽고, 가방에는 고전과 정말 당신에게 영감이되고 깨어있는 사고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책을 가지고 다니길 바란다. 



  삶의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베스트 셀러에 가려져 뒤편에 처박혀있는 고전 속에서 인생의 진정한 선배들이 오랜 시간동안 고민하여 써내려 간 한 구절 한 구절 안에 진리는 녹아들어있다. 
  조만간 서점에 간다면, 베스트셀러는 잠시 접어두고 고전의 향기에 심취해보라. 분명 이전과는 다른 당신을 보게 될 것이다. 


 

 책을 다시 읽게 되면 당신은 그 책 속에서 전보다 더 많은 내용을 발견하지는 않는다. 단지 전보다 더 많이 당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클리프턴 패디먼


'매일365 > 매일36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만이 아는 '그 다음'  (0) 2015.08.06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사회  (0) 2015.08.05
Beyond the BEST SELLER  (0) 2015.08.02
진심을 다해 사랑하라  (0) 2015.07.22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0) 2015.07.20
진짜 공부가 무엇인가요?  (0) 2015.07.15
Posted by nakhm999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당신은 한달에 책을 몇 권 읽는가? 짐작하건데 아마 주기적으로 3권 이상 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포털사이트에서 나온 결과로는 성인 연간 독서량은 9.2권이며 평일 독서시간은 23분 내외이다. 한국인 하루 평균 인터넷 사용량은 2.3시간, 스마트폰 사용량은 1.6시간에 비하면 턱도없는 수치이다.이것도 2013년도 결과라서 아마 수치는 더 낮아졌을거라 생각한다. 
내 주변에서만 보더라도 세권은 커녕 한 달에 한 권 이상 읽는 애들도 손에 꼽을 지경이다. 책을 읽지않는 이유가 궁금하여 물었었고 대답은 언제나 예상했던 그것이었다. “재미없어, 뭐하러 읽어? 그 시간에 미적분을 한 번 더 보겠다.” 이것은 꽤 위험한 수준의 대답이라고 할 만하다. 책을 읽지않는 아이, 청소년, 청년, 노년. 그리고 외면하는 국가.



  내게 책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책은 한 세계이고, 그 세계는 내가 경험치 못한 것을 알려주니 읽는다.’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책을 읽고 또 많은 사람들도 다양한 이유로 독서를 멀리한다.



  나는 책은 습관에 의해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적 부모님이 책을 책장에 항상 꽂아주셨었고 일부러 방바닥에 어지렆히기도 하셨다. 아마 나와 책을 가깝게 하기 위해 생각하신 아이디어인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 읽는 습관을 기르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어렸을적부터 고전이나 어려운 소설을 읽은 것은 아니였다. 지금도 생각나는 책장 풍경은 <그리스 로마 신화> 전권과 <호기심 천국-과학 특공대>였나, 혹은 <어린이를 위한 고전 클래식> 등 쉽고 만화로 된 책부터 접했었다.
아동기에 접한 책과 그 속의 상식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아직도 내 머리 속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러 상식들, 예를 들면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의 간략적인 줄거리라도 알고 12신이나 그들에 관한 유래는 나의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게 말 할 수 있다. 
  유아동기에 책과 친하게 지낸 아이들은 성장하면서도 책을 멀리하지 않는다. 우선적으로 지식의 베이스를 쌓을 수 있는 곳은 책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굳이 멀리하지 않는 것이다. 



  비약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책은 담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른채로 접하지만 읽다보면 읽을수록, 하다보면 할수록 습관이 되어가고 습관은 취미와 애호가 돼가는 것이다. 



  대한민국 보통의 가정 분위기는 어떠한가, 부모는 유아동기에는 책을 많이 접하게하려고 클래식 명작 100권을 사다놓는다던가 한국뿐만아니라 글로벌하게 세계의 위인전까지 몽땅 아이들에게 사다 바친다. 그러나 처음부터 어려운 책들을 억지로 미취학 아동들에게 건네면 어쩌란말인가. 읽고싶기는 커녕 집어 던지지않는 것이야말로 다행스러운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 좀 책을 읽어볼까 싶으면 부모들은 금세 돌변한다. 책 읽을 시간에 공부나 좀 더 하라고, 책 읽을 여유가 있냐며 꾸중한다.
  굉장히 역설적이라고 생각한다. 한창 사고하고 창의성이 키워질 나이에 책을 손에서 빼앗다니. 이래놓고서 교육부는 청소년들에게 창의적으로! 참신하게! 라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인가.



  나이대에 맞는 책이 꼭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의 역량과 수준에 따라 독서의 양과 질이 달라지는데 너무 높은 차원의 책을 아이들에게 읽히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서습관은 처음이 중요한데, 수용자가 느끼기에 어렵거나 이해되지 않는다면 올바른 독서습관을 가지기란 어렵다. 
  독서는 습관이다. 처음에 어떻게 들이냐와 이것을 지속해서 나가는 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사회가 책을 권하지 않고 있다. 물론 정부는 ‘책의 날’을 지정해 아이들의 손에 강제로 책을 쥐어주긴 하지만 이것은 ‘강요’이며 ‘폭력’이다. 억지로 시키는 것은 오히려 반감만 상승시키고 독서와는 거리가 멀어지는게 당연한 결과 아닌가.
또한 사회 분위기가 공부’만’ 잘하면 되는 분위기라 학원에서 지식을 습득하느라 바쁜 아이들에게 독서의 배움은 무시한채 학교 학원 집 뺑뺑이만 돌리는 사회이다.



  독서하지 않는것은 문제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적을 높이는 것은 단순히 근시안적인 시선에 불과하다. 수능지식은 가득하지만 내면의 힘과 사고하는 뇌 근육은 밋밋한 사람에게 그토록 한국사회가 부르짖는 창의력과 창조성을 기대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이다.



  또 한가지 심각한 문제는 바로 겉치레로 책을 읽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온 포커스를 맞춘다. 내가 좋아하고 읽고싶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남이 보기에 멋있어 보이는 책, 혹은 어려워 보이는 책. 허세로 가득 찬 독서방법이다. 물론 이렇게 읽더라도 남는게 있다면 좋은 현상이겠지만 대부분은 타인의 시선만 사라진다면 책장을 덮는다. 지하철에서 <코스모스>를 읽는 사람이여도 중력을 발견한 사람이 뉴턴인지 아인슈타인인지도 헷갈리는 사람이 허다하다는 얘기다. 남의 시선에 의해 책을 선별하고 읽으니 어렵고 읽고싶은 마음이 사라지는게 당연하다.
  아무렴 어떤 책이여도 좋다. 남자가 하루키를 읽는다고 해서 문제될게 없지 않은가!
본인이 좋아하고 읽고싶은 책을 읽어야한다. 이것이 이어지면 그저 한 권의 소설에서도 인문과 고전으로 이어지는 신기한 길을 경험할 수 있다. 



  한 때 나는 허세독서를 즐기느라 고전은 대충, 소설을 덜 대충하며 독서하곤 했다. 그러던 중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푹 빠져서 한 몇달간은 하루키의 전권을 다 읽느라 혼을 뺐던 적이 있었다. 하루키를 읽으니 일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은 나스메 소세키의 전집을 읽게하고 기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탐미하게 되었으며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는 기회도 되었다. 그저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후 일본 고전에까지 다가간 것이다! 이쯤에서 하루키에게 박수를 돌리도록 하자.



  한 인간을 알고자 할 때에는 그 사람이 지금 읽는 책과 그가 쓴 글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였다.
스펙은 토익 점수나 자격증의 개수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는 이것을 알아야한다. 독서하지 않는 사람의 스펙은 그저 허울뿐이라는 것을. 전에도 말했듯이 독서하지 않으면 생각 할 수 없고 사고하지 않는 삶은 죽은 삶과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또한 가정에서도 교육되어야 한다. 육아가 물론 힘들고 지친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게 도와주고 아이가 운다고 해서 스마트폰을 쥐어줄 것이 아니라 옆에서 책으로서 육아하는 방법을 지향해야 한다. 
한 개인으로서는 책의 중요성을 알아야한다. 책은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읽는 것보다는 그 자체로서 즐겁고 지식을 확장하고 비판적 사고를 갖게되는 하나의 과정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새인가 내가 그저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 아닌, 정보를 선별해서 받아들이고 활용하며 비판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자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 중 비판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것에 책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수많은 경험과 지식이 녹아내려져있는 삶이 결과물이다.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서 작가가 만들어놓은 한 세계를 경험하고 그 세계를 나에게, 상대에게, 사회에게까지 바라보는 거시적인 태도를 갖출 수 있게 된다. 



대한민국의 침체된 독서시장을 높이기 위해서 몇 마디 적어보겠다.

우선, 읽고싶은 책을 읽도록 하자.
자기 계발서도 좋고 소설도 좋으니 좋아하는 작가도 만들어보고  관심가는 책부터 읽어보자. 괜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논어>등 알량한 허세는 잠시 접어둬도 좋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로부터 시작한 작은 관심이 언젠가는 진심으로 <군주론>을 읽게 하고 당신또한 생각하게 할 것이다.



다음으로 책을 읽는 것은 가장 오랫동안 검증된 지혜이다.
사회가 급변하고 스마트 시대로 변하면서 수많은 아이북이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책이 여전히 굳건한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그저 ‘책’이라는 존재만으로도 설명이 된다. 
작가 허지웅이 말했듯이 TV만 보면 테이스트가 없는 사람이 되고 인터넷만 보면 자기가 해보지 않은 모든 것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틀렸다고 말하게 되며, 경험만 많이 쌓으면 주변 세계와 격리된 꼰대가 된다고. 종류가 무엇이든 읽자. 책은 가장 오랫동안 검증된 지혜라는 것은 반박불가이다. 



마지막으로 책=허세, 어려움 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라!
프레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한번 만들어 놓은 프레임은 잘 깨지지도 않고 깨고 싶지도 않아한다.
어렸을 적부터 책에 습관을 들이지 않았다면 저 프레임은 머리 속에 딱 박혔으리라. 책은 결코 어렵고 허세의 행위가 아니다. 언제부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는 것이 허세고 카프카를 논하는 것이 멀게만 느껴졌는가.
지적 자산은 남에게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다. 오히려 책을 읽지 않고, 사고하지 않는 사람의 대화야말로 허세끼가 가득하다. 



  책을 읽어야만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수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기본 베이스는 ‘책’이다. 성공을 위해서 독서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독서는 성공한 많은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으니 하물며 우리한테는 어떠할 것인가. 
  남을 위해서 독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부터 나아가야한다. 이미 당신의 내면에서 지적 허덕임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책 읽는 시간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

  - 데카르트


Posted by nakhm999
TAG 독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