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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365/매일365

알바몬 광고로 보는 우리 사회의 편가르기 문화

대한민국 사회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깔려져있는 네 편, 내 편의 편가르기 문화


얼마 전부터 텔레비전에 자주 나왔던 알바몬 광고의 야간수당편이 제재를 받아 결국 방송에 다시 나오지 않겠다고 합의를 봤다고 한다. 이 광고의 논란의 중심은 바로 일부 PC방, 편의점 업주들이 너무 악덕적으로 표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광고의 폐지를 부추겼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할까, 나는 이러한 업주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그간 알바생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횡포를 부린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기회가 됐다고 생각했다.

 알바몬의 시리즈 광고들로 인해 나타난 효과적인 면을 살펴보면, 당연하지만 알 수 없었던 알바생들의 권리를 알게되고 야간수당이나 최저임금의 정확한 기준과 액수를 제시해주어 이제는 호락호락하게 소중한 임금을 뺏기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광고를 보면서 긍부정적 영향 보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깔려진 편가르기 문화에 대해서 말해보고싶다.

편가르기 문화는 여러 모습으로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형성되어있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세대갈등,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갈등, 대학교 서열로 구분짓는 학벌문화 같은 것은 대한민국의 사회 관습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여러 편가르기 문화 가운데 내가 개인적으로 걱정이 되는 것은 대학교 간 서열싸움이다. SKY/서성한/ 중경외시 이렇게 대한민국의 탑10대학을 그저 수능성적으로 선별하고 ‘/‘마다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것 마냥 줄을 세워놓는다. 심지어는 나머지 인서울 대학들은 고만고만 한 것이고 지방사립대는 일명 ‘지잡대’라고 부르며 마치 서울시민이라면 결코 갈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대학서열을 구분하고 학생들끼리 넷상에서 무슨 과가 좋네 마네 하며 언변을 펼치는 것이 학벌사회를 조장하고 나아가서는 지역간의 양극화를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 21살 청년들이 처음 사회에 입문하는 발판인 ‘대학’에서만큼이라도 서열을 구분짓지말고 수평적인 평등화를 구현해야 사회문제의 작은 실마리라도 풀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만연하게 전제된 편가르기 문화의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세가지 근본적인 이유를 써보겠다. 

 첫째, 지나친 인간소외 현상이 그릇된 소속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급속한 사회발전으로 인해 빨리빨리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다시 일하고 이 루트를 수없이 반복하게 되는 시스템 속에서 ‘같이’의 가치를 많이 상실하게 되었다. 무언가 함께 일하고 향유하는 것이 아닌 지나치게 개인적인 문화나 이데올로기가 인간에게 끝없는 소외감을 준다.이러한 상실감, 소외감이 어떠한 집단 안에 소속되고 싶어하는 충동적인 욕구를 낳는 것이다. 과도한 소외감이 어느 편에나 들고싶게 만들어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가 낳은 빈부격차이다. 
 산업혁명 이후로 도입된 자본주의의 양날의 검인 빈부격차는 현대 사회에 수많은 문제들을 발생시켰다. 부의 재분배가 효율적으로 이뤄지지않는 우리나라에서 빈부격차, 부익부 빈익빈,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모든 문제들의 시발점으로 생각되어진다. 빈부의 격차가 사람과 사람사이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형성시키고 삼삼오오 각각의 그룹을 만들어 사회 시스템을 굴리는데 여기서 이미 네 편과 내 편이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부자들은 부자들끼리, 가난한 서민들은 서민들끼리. 끼리끼리 뭉치게 되다보면 양방간의 대화와 소통은 결핍되기때문에 편가르기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길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극단적 이기주의를 생각 할 수 있다.
  인간의 밑바닥에 깔려져있는 본성 중에는 그 누구보다 ‘나’를 중시하는 본성이 서려있다. 그러므로 우선은 나를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본능이 사회가 빠르고 비대하게 발전함에 따라 옳지 못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연합된 공동체가 많아질수록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다시 또 편가르기를 할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생각하는 태도도 갖추어야한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위해서만 행동하면 안되는 것이다. 사회는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하는 것인데 극단적인 이기주의나 공동체를 형성하면 

알바몬 광고 사태로도 알 수 있듯이 업주들은 업주들의 이해만 고려하고 알바생들 또한 그들끼리만 뭉쳐서 서로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맹비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다. 누가 더 위에 있고 누가 더 권위있고 없고의 수직관계가 아닌 평등한 수평관계를 가져야 한다. 사실 고용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도 중요한 것은 평등한 관계이다. 가족을 예로 들어보자. 부모님은 부모라는 이유로 혹은 어른이라는 이유로 자식에게 훈계한다. 나는 훈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모가 말을 할 때에는 이미 전제가 내가 너보다 윗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이건 옳은 말이다. 라는 뉘앙스가 심히 농후하다. 자식은 부모의 결과물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애에서 만나 추억과 시간을 가장 가까이서 친밀하게 나누고 가는 사이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에서도 위계질서가 잡혀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딸도, 어머니와 아들이 다 같이 평등한 관계가 되어야 각종 가정문제나 가정폭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지않을까.

유학에서 공자는 이런 가르침을 했다고 한다.
기소불욕 물시어인 즉 내가 하기싫은건 너도 하기싫은 일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소중한만큼 나도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만약 업주가 자신이 소중한 것을 알면 나와는 다르지만 우리 알바생도 똑같이 소중하니 조금 더 인간적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알바생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게 편을 가르지 않고 서로 소통과 이해가 공존한다면 알바몬 광고가 아예 제작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인류는 거대한 한 편이다. 이러한 사람과 저러한 사람들이 모여 융합된 한 편을 만들었고, 만들고,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렇게나 척박하고 어려운 현대 사회 속에서 네 편, 내 편 나누어서 분단하지 말고 다 같이 하나의 공통된 정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편 가르기 문화를 배척하게 될 수 있는 중요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