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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365/매일365

돈이 곧 조국이고 영웅인 세상 속에서의 사랑

돈이 곧 조국이고 영웅인 세상 속에서의 사랑 

   <비즈니스>, 박범신 저


  내 기억속에서 박범신의 소설은 두 편 읽은 것 같다. 아 이번 책까지 합치면 세권이겠다. 제일 처음 접한 작품은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상을 그려낸 <소금>이었고, 스토리 자체는 다소 막장에 가까웠지만 아름다운 문체와 노련한 필력으로 풀어낸 <은교>를 읽었었다.
이번 <비즈니스>는 전혀 어떠한 이유없이 만나게 되었다. 표지만 보자면 ‘어라 이게 무슨 내용일까?’ 하는 기분탓도 있어서 주제가 무엇인지 갈피를 못 잡았지만 프롤로그를 넘어가고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에, 캐릭터들에게도 무한히 빠져버렸다. 
이번 소설도 그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쉽게만 끝내버릴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박범신의 소설은 항상 가벼운듯 무거운 주제를 내포하고 있기에 차분히 읽어내려갔다. 필자는 이번 소설에서 자본과 비즈니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필요성에 대해 말해보겠다.



  20세기에 산업혁명을 지나고 나서 우리 사회는 급격한 속도로 발전하며 눈부신 성장을 이룬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자궁에서 나온 ‘자본주의’라는 결과물은 양날의 검을 가지고 있는 위험한 괴물이었고 이것은 이제 폭력적인 모습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당연히 ‘자본’이다. 누군가는 자본을 풀어 사회를 굴리고 누군가는 자본을 얻음으로서 사회를 살아나간다. 또한 개인의 역량을 통해 자본은 분배된다.
나는 이것은 자본주의 이념의 정의이기때문에 힐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면 다 된다.’라는 의식이 팽배하게 깔려져 있고 진실된 사랑이 결핍된 지금 시점에는 분명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듯 하다.


 
  소설에서는 모든 부와 문화가 신흥 자본가, 즉 권력과 돈을 쥐고있는 그들의 거주지인 신시가지로 모이게 된다. 21세기형 꿈의 도시로 불리우는 이 곳을 더욱 더 성장시키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구시가지를 신시가지의 방패로 삼는다. 각종 오염폐수와 쓰레기 매립지를 주민이 거주하는 구시가지에 처참히 내버린다. 그러나 구시가지 주민들은 아무런 항의도, 반대의사도 내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겐 자본이 없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만한 힘이 아니라 ‘돈’이 없기에 그들은 침묵만 내비친다. 
  소설의 주인공은 39살로 중학생 아들을 둔 엄마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외고로 보내 출세시키기 위하여 ‘자본주의의 전사’로 만들 계획을 한다. 그녀는 아들을 외고로 보내기 위한 비싼 과외비를 대기 빠듯하여 스스로 매춘을 자처한다.
작가는 자식을 ‘먹이기’위해 매춘을 하는 엄마는 세계 어느곳에도 있겠지만 자식의 ‘과외비’를 위하여 몸을 파는 엄마는 아마 대한민국에서만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그녀는 아들의 출세를 위한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명백한 몸을 파는 매춘이며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돈이면 다 된다.’라는 생각이 구시가지에 쓰레기를 투기하기도, 한 아들의 엄마가 몸을 팔게 하기도 하였다.



  돈이면 만사 오케이라는 사고방식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 어떠한 것도 돈이 오고간다면 윤리성이나 인간성을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을 상품화하는 매춘이 질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혹은 돈으로 모든 문제를 막는 정부나 기업의 행위는 왜 욕을 먹는 것인가? 바로 기본적인 도덕성이 상실했기 때문이다.
도덕성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판단에 기초해 인간이 행하는 본성인데 이것이 상실된다면 우리가 짐승과 다를게 무엇인가. 물론, 어머니가 아이의 과외비를 대기 위하여 일을 찾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이 수단이 ‘매춘’이라는 성을 상품화시킨 행동으로 이어져서는 안되었다. 성, 사랑, 혹은 도덕은 인간성에 기초한 개념이다. 인간성이 결핍된 사랑과 성은 그릇된 문제를 낳을 수 밖에 없다. 
또한 신시가지의 사람들은 돈으로 어떠한 것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에 마음놓고 구시가지에 쓰레기를 투기하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한다. 혹여 그들이 들고 일어난다해도 자본을 창과 방패로 삼는다면 쉽게 함락시킬 수 있는 것을 알기에 더욱 기고만장하다.
이런 것을 그들은 ‘비즈니스’라고 부른다. 매춘도, 그들의 행위도 돈만 오고간다면 비즈니스이고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비즈니스가 향하는 종착지는 파멸뿐이다.
오직 돈만이 그녀의 조국인 주리에게는 사랑도, 결혼도 모두 비즈니스의 하나였다. 스무 살부터 자신을 스폰할 수 있는 성공한 재력가들과 만나고 결국엔 결혼까지 그녀의 바램대로 이뤄냈다. 인간적이고 진실한 사랑이 결핍된 그녀에게 진정으로 사랑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에 주리는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결국 비즈니스의 성공적 결과물이었던 결혼도 끝나고 새로운 사랑에게는 사기를 당하고 만다.            오직 돈만이 그녀의 영웅이었던 세상의 엔딩은 파멸뿐이었다. 
자본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줄수는 있지만 해방되고 행복하게 해 줄수는 없다. 금수저로 태어난 삼성가의 막내딸도 그 많은 자본을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생을 스스로 끊지 않았던가. 



  사랑도 연애도 결혼도 이제는 전부 비즈니스가 되어버린 판국에서 진실된 사랑을 찾아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온달 컴플렉스나 신데렐라 신드롬이 등장한 이유도 나는 ‘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만이 조국이고 영웅이기에 결핍된 진실대신 두툼한 지갑 앞으로만 달려가는 것이다. 이것을 순수하게 진실한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성을 상품화 시켜 하나의 비즈니스로 만들고 심지어는 청소년들과의 관계를 용돈만 쥐어주고 아무렇지않게 하는 이런 것을 비즈니스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진실이 결핍된 사랑, 그것이 연장된 연애와 결혼. 이것은 한 인간을 파국으로 치닫기에 충분하다. 사회가 다원화가 되면서 수많은 종류의 관계와 상황이 만들어지지만, 끝끝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것은 존엄한 인간성이다.
실체하진 않지만 분명 느끼고 있고, 추상적이지만 무언가 확실한 그 무엇을 도덕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확실히 도덕과 사랑이 상실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최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흥행하여 굉장히 높은 판매부수를 올렸고 수많은 인문학 강의도 전국적으로 성행하고 있는 이유는 이 사회가 이미 정의와 도덕이 결핍되어 있기에 사람들은 도피처를 갈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는 이미 많은 길을 걸어왔다. 더 이상의 기대를 바라는 것이 웃기는 사회가 되어버린 지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중요시 되어야 하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다. 단지 연인만의 국한된 사랑이 아닌 공동체적 연대가 필요하다. 나로부터 시작된 작은 사랑이 점차 커지면 큰 사랑이 될 것이다. 이 사랑은 분명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포기해서는 안된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계는 하나의 영웅이 바꿔놓은 것이 아니라 다수의 민중들이 힘을 합해 이뤄낸 것이다. 이 힘은 단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진실된 사랑과 공동체의 연대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분별한 비즈니스가 판치는 우리의 사회에서 진정한 사랑과 연대가 잘못된 자본주의의 괴물을 누를 수 있기를 작게나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