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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감성/씀

1.술

 
 1. 술



  나는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술을 마심에 의한 달아오른 분위기나 그 분위기 속에서의 오고가는 서로의 대화가 나를 훨씬 즐겁게 만든다. 적당히 취한, 흔히 말하는 알딸딸한 분위기가 가장 좋다. 서로의 볼은 발그레해져 쳐다보기만 해도 까르르 웃음이 나오고 괜스레 내뱉는 말마다 자신감이 있고 용기가 솟구친다. 아무도 몰래 저 밑에 숨겨두었던 깊은 이야기들이나 차마 전해지 못했던 말들도 나도 모르는 새에 줄줄 나온다. 그래서 이런말도 있지 않은가, 분위기에 취한다라는 말, 결코 틀리지 않은 말이다.



  예전에는 술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매일, 그리고 많이 마시기위해서 노력했나 모르겠다. 지금은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안 마시기위해 노력했지만 과거 속의 나는 항상 혈중 알코올 농도를 일정상태로 유지했던 듯 하다.  
 작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연말과 새해가 겹치며 굴러들었을 때에 나는 매일 술자리를 만들었다. 대개는 친구들과, 가끔은 혼자서, 정말 간혹가다 부모님과 한 잔 하기도 했다. 술자리가 그냥 즐거웠고 떠들썩한 분위기와 일년의 마지막을 정리함이 괜히 들떴었나보다.그렇게 퍼부으면서 잃은 것은 피부와 정신상태였고 얻은 것은 주정에 관한 창피함과 술을 먹지 말자라는 신념 그리고 글이였다. 



  이상했다. 술을 마시게 되면 괜스레 글을 쓰고싶어졌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한 잔 마시고나면 지난날의 기억들과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주마등처럼 떠오르다가 이내 가슴 한 구석에 복잡한 감정들을 실어다주고 떠난다. 그 후에 해야할-가령 글을 쓴다든가하는-일은 온전히 내 몫이다. 술을 마시고 글을 쓰면 괜히 잘 써지는 기분이고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설레는 기분이었다. 물론 음주 후의 글이라 다음 날 아침에 보면 간혹 소름이 돋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대개는 많은 수정을 거치지 않고 꽤 맘에 들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어느날에는 감당이 안될정도로 혼자 술을 마신적이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더 미묘하고 깊은 문장을 쓰기위해 가끔 그런 정신나간 짓을 했다. 그렇게 혼자 만취하고 끄적이던 글들을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실소가 터졌다. 그 글들을 통하여 문득 깨달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끝내 인정해버리고마는 것, 사람이라는 것. 내게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글을 쓰기위하여, 깊이있는 문장과 독특한 구조를 위해서 술을 마신다고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내 곁에 있는 누군가가 존재하는가와 아닌가의 문제다. 홀로 술을 마시고 뱉어내는 글을 결국 휴지통으로 가버린다. 감정은 있지만 깊이는 없다. 분노는 있지만 애정은 없다. 연민은 있지만 사랑이 없다. 혼자 마시고 혼자 취하고 혼자 쓰는 글에는 존재가 없다.  
  그래, 누군가와 함께 마시고 함께 즐기고 함께 감정을 공유하며 적어냈던 글이 더욱 다채롭더라. 뒤늦게 알아버린 사실이였다. 혼자 알딸딸하다고해서 글도 발갛게 달아오르지는 않는다. 까르르 웃게 만드는 글은 내 곁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여서 그런거였더라. 그 후로 술은 혼자는 잘 안마시게되었다. 나 홀로 느끼는 시간과 감정만으로는 충분치않았다. 대상과 천천히 시간을 나누며 공감하고 대화한 그 느낌으로 글을 써야 가득하고 색채가 있는 글이 나왔다.
 




  물론 나도 철저히 혼자의 시간을 좋아한다. 나만의 홀로됨, 그 시간을 아낀다. 그러나 평생, 내 생애에 홀로되고싶지는 않다. 혼자 따는 맥주캔보다는 같이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건배하고싶다. 알딸딸하게 취하여 발그레한 내 볼을 웃으며 바라봐줄 그런 사람과 술을 마시고 시간을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며 글을 적어가고싶다. 
  아무래도 술을 마시는 일보다는 그 시끌벅적하거나 혹은 조용하여 적막한, 그런 분위기를, 그런 대화를 더 갈망하는 내게 마지막은 사람인가보다. 
  결국은 사람이고, 또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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